[理知논술/고전여행]이반 일리치의 죽음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죽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을 뽐내는 사람도 ‘나의 죽음’만은 겪어보지 못한다. 삶과 죽음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현존하지 않으며 죽음이 현존할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어떻게 살았건 피해갈 수 없고, 굳센 의지로도 극복할 수 없다. “저승이 얼마나 좋으면 죽은 후에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겠는가.” 우리네 옛 노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학으로 버티려 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미리 죽어볼 수 있을까. 벼를 모르는 도시 아이라도 농촌 체험을 다녀오면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내 삶이 다다를 죽음 앞에 미리 달려가 보고 온다면 지금 사는 이 순간이 다시 보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통찰력이 선사한 ‘이반 되기’ 체험이다.

이반 일리치는 45세의 남자다. 그의 삶은 나름대로 무난하고 성공적이었다. 고위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고, 학창 시절 내내 영특하고 예의 바르며 사교성도 좋았다. 그는 법률학교를 졸업한 후 승진 가도를 달려 고위 법조인이 되었다. 게다가 가문도 좋고 예쁜 아내를 얻어 딸과 아들을 두었다. 부족한 것이 하나 없는 부러운 인생. 그에게 인생은 축복이었으나, 그 삶의 절정에서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자신의 몸 내부에서.

이반은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상류 계층 사람들처럼 살고자 했고, 그의 삶은 충분히 모든 것을 이루었다. 44년간의 인생이 그렇게 빠르게 진행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옆구리에 통증이 찾아왔고, 그의 삶은 느려지기 시작한다. 육체의 불쾌한 고통, 거만한 의사, 자신을 귀찮아하는 가족,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직장 동료들을 깨닫는 일이 점차 중요해졌다. 이반은 최초로 삶에 대해 질문한다. “맹장이나 신장 따위는 문제가 아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야. 그래, 삶이 있었는데 지금은 떠나가고 있는 거야. 그런데 내가 정말 죽는 것일까?”

이반에게 죽음은 절망이었다. 그는 죽어간다고 깨달았을 때, 갑자기 학창시절에 배웠던 키제테르의 논리학을 떠올렸다. ‘가이우스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가이우스는 죽는다.’ 그 유명한 연역삼단논법이다. 하지만 이반은 가이우스에게만 죽음이 적용될 뿐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저항한다. “무수한 감정과 사상을 가진 나 이반 일리치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반은 가이우스 앞에 선을 긋는다.

죽음을 거부하는 이반의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우면서도 당혹스럽다. 그러나 이반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타인을 꿰뚫는다. 진찰하는 의사는 약자의 인생을 결정하며 우쭐했던 법관 자신이었다. 여전히 건강한 가족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가족다운 예절만 챙기고 있다. 직장 동료들은 이반이 죽으면 발생할 인사이동에 더 관심이 큰 경쟁자들이다. 이반은 이제야 위선을 보는 눈을 가졌고, 그들은 모두 과거의 이반 자신이었다.

이반은 주변의 건강한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갈등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가이우스가 아니고 이반만 가이우스가 되었다. 이반만이 아편으로 고통을 다스려가며 삶의 시간을 느낀다. “왜 내가 죽어야 하지?” 삶에 대해 묻지 않던 이반이 죽음 앞에서 이유를 묻는다. 죽음은 지독하게 고독하다.

이반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이반은 죽기 전 사흘 동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어느 순간 번쩍 하는 ‘빛’을 보았다. “그래. 모두 잘못되었어.” 그는 최초로 자기 삶의 밑바닥을 인정했다. 반성 없이 삶에 집착하던 이반이 드디어 자신을 들여다본 것이다. 그 순간 아픔이 몸에서 튀어나가고 그는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삶이 가야 하는 방향에 몸을 실은 느낌. ‘이거다, 참으로 기쁘다!’ 그렇게 그는 눈을 감았다.

우리도 언젠가 가이우스가 될 것이다. 죽음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인생을 반성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반이 되어 보자.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삶은 죽음의 연습”이니까.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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