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막강내신’ 여학생이 무서워요!
《대구 수성구 덕원고는 6년간의 남녀공학 운영을 마치고 남고로 복귀하겠다는 신청서를 최근 대구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여학생에 비해 내신 성적이 불리하다고 느낀 남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 학교에는 ‘남고 복귀 추진 준비위원회’(교사, 학부모, 동창회 등으로 구성)까지 만들어져 있다.
남녀 공학에 가면 남학생은 내신 걱정에 울상을 짓는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학생은 남중·남고를, 여학생은 남녀공학을 선호하는 이른바 ‘남녀공학 기피현상’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남녀공학 학교에 가면 무리해서라도 전학하려는 남학생이 적지 않다. 실제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성적이 좋다.
서울 강남구 언북중의 경우 내신성적 상위 10% 학생의 남녀 비율은 남자 30%, 여자 70%다. 이 학교 이신우 교장은 “특수목적고에 지원하려는 남학생이 내신 성적 때문에 불만인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지역 외국어고 신입생 2170명 가운데 여자는 1387명(64%)으로 남자 783명(36%)의 2배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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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학생의 외침…“남녀공학이 싫어요”
요즘은 남녀공학이 대세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7년 4월 1일 현재 남녀공학은 전국 2731개 중학교 가운데 2231개(81.7%), 전국 2159개 고등학교 가운데 1320개(61.1%)다. 해마다 이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남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가급적 남녀공학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A(서울 노원구 중계동) 씨는 지난해 가까운 거리의 아파트로 집을 옮겼다. 큰아들을 남고로 전학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길거리에서 남학생 학부모를 붙잡고 물어보면 열 명에 여덟 명은 남고를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학생도 마찬가지다. 2004년 강원대 교육대학원의 석사학위 논문 ‘수행평가가 중학생의 남녀공학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선지원·후추첨으로 남녀공학에 배정된 중학교 2, 3학년 학생 424명 가운데 재배정시 남녀공학을 희망한 학생의 비율이 남학생은 40.9%, 여학생은 83.3%였다. 그 이유에 대해 ‘남녀공학이 내신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은 남학생이 4.6%인 반면 여학생은 60.3%였다.
○ 남학생 부진의 이유는?
‘알파걸’(학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엘리트 여성)에게 기를 못 펴는 남학생이 많은 이유는 뭘까? 교육·의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여학생과 남학생의 발달 차이다. MRI 두뇌영상 연구에서 사춘기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보통 1년 반∼2년 두뇌 발달이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의진 영동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남학생과 여학생을 한 교실에 넣는 건 한두 살 어린 남동생과 누나를 경쟁시키는 꼴”이라고 말했다.
남학생의 강한 성적 충동도 문제다. 남자아이는 보통 초등학교 5, 6학년 때 남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해 중학생 때 성적인 충동이 강해진다. 이 시기에는 성적 충동과 싸우는 데 따로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집중력이 높아진다.
예컨대 점심시간에 웃통을 벗고 팬티 차림으로 축구를 해서 성적 충동을 건전하게 풀고 나서야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 교수는 “남학생의 집중력은 고교 1학년 때쯤 되어야 여학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둘째, 성격 차이다. 여학생은 대개 남학생보다 성실하고 꼼꼼한 편이다. 여학생은 내신성적에서 평균 30∼40%를 차지하는 수행평가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서울 송파구 가락중 신무선 교무부장은 “남학생은 수행평가를 대충대충하기 때문에 여학생이 수행평가 점수가 높다”고 말했다.
특목고 입시 전문학원인 ‘토피아 아카데미’의 김석우 중계캠퍼스 중2 부장은 “여학생들은 조직체계나 부모에게 순종적이라 학교나 학원처럼 답답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지만 남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셋째,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대체로 언어능력이 뛰어나다. 수행평가나 지필고사는 언어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여학생에게 유리한 평가방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석우 부장은 “조리 있게 말하는 여학생과 생각은 많지만 거칠게 말하는 남학생은 수행평가 발표력 점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남학생들의 고백 “음악 미술 등 예체능 시간, 절망감을 느껴요”▼
○ 난 이럴 때 여학생 때문에 좌절한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좌절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서울시내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10여 명에게 ‘도저히 여학생을 이길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은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수행평가’와 ‘노트정리’였다.
특히 수행평가 비중이 최고 80%에 이르는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과목에서 남학생들은 좌절을 느낀다. 남학생들은 체육은 곧잘 하지만, 대부분 음악 미술에는 약하다. 학교 시험에서 평균 96점을 받는다는 김경빈(서울 중원중 2) 군은 “점수를 깎이는 건 항상 지필고사가 아니라 수행평가, 그중에서도 음악 미술”이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남학생들은 변성기 때문에 음악 가창시험에서 불리하고, 감수성이 딸려 미술 실기에서도 밀려요. 그럼 체육 수행평가에서라도 만회를 해야 하는데, 체육 점수는 같은 50m를 뛰어도 남자는 7초, 여자는 10초여야 만점이라는 식으로 남녀 기준이 따로 있잖아요.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봐요!”(김 군)
외국어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박연탁(서울 신동중 2) 군은 전교 10등 안에 들고 싶지만 수행평가 점수가 걱정이다. 박 군은 “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은 수행평가 점수가 월등히 높다”고 말한다.
전교 2등을 하는 같은 반 여학생은 남학생들 사이에 점수 받기 어렵기로 소문난 미술 실기평가에서 홀로 90점대를 달려 항상 부러움을 사고 있다.
남학생들은 각종 색깔펜으로 깨알같이 적어 내려간 여학생들의 노트를 볼 때 어떤 경이로움마저 느낀다고 말한다. 박연탁 군은 “남자애들이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노트 필기는 못 따라간다. 여학생처럼 꼼꼼·세심하지 못하고 건성건성 넘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창주(서울 중원중 2) 군은 “여학생들에게 ‘노트 좀 빌려주라’라고 말하면 대개 ‘싫어, 나도 별로 못 적었다’고 대답하면서 안 보여 준다. 남학생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는다”라며 분개했다.
▼남녀공학서 女이기는 男… 그들의 눈물겨운 생존법▼
“확실한 건 체력 하나… 女 잠잘 때 공부”
“노트 좀∼” 애교-통사정… 여학생 필기 노하우 벤치마킹
‘남녀공학에선 남자가 손해다’는 고정관념을 깬 남학생이 있다. 박상진(서울 상계중 3학년) 김준규(서울 염광중 2학년) 윤지훈(서울 석관중 2학년) 김은호(서울 노일중 2학년) 군은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1등을 달린다. 이들은 여학생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남학생의 장점을 살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공부의 메트로섹슈얼(내면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즐기는 현대 남성)’이라 할 만하다.
○ 여자들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라
이들은 남학생이 특히 약한 수행평가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윤 군은 “수행평가 남학생은 20∼30점대에, 여학생은 70∼80점대에 점수가 몰려 있다”면서 “여학생은 수행평가 과제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남학생은 조별과제를 할 때 ‘여자 애들이 다 하겠지’라는 생각에 건성으로 할 때가 많다.
윤 군은 “적극적으로 조별과제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1학년 때 ‘국어 사용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프레젠테이션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앞장서서 파워포인트 제작을 맡았다. 같은 조인 다른 남학생에게 상호평가 점수를 안 주겠다고 ‘협박’해 조원 6명이 골고루 참여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수행평가로 책이나 노트를 걷어서 필기 검사를 하는 학교도 있다. 남학생에게는 무서운 검사다. 하지만 박 군은 꼼꼼한 여학생이 한다는 ‘2단계 필기법’을 실천하고 있다. 수업 중 교사의 설명을 적고 나중에 내용을 재해석해 체계적으로 다시 필기한다. 예를 들어 국사 수업을 듣고 나면 특정 사건의 주요 쟁점이나 성과를 항목별로 정해서 깔끔하게 정리해 둔다. 박 군의 책은 시험기간에 교실 한 바퀴를 돈다. ‘깍쟁이’라고 알려진 여학생도 박 군에게만은 필기한 내용을 보여준다. 단, 그들도 박 군의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조건이다.
김은호 군은 여학생들의 노트를 빌려 자신이 쓴 노트를 보충한다. 남학생은 선뜻 노트를 빌려주지만, 글씨를 도무지 알아볼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김 군은 “여학생들은 노트를 빌려줄 때도 그냥 안 빌려주고 꼭 ‘거래’를 하려고 든다”면서 “노트를 건네주는 여학생이 요구하는 건 사탕 서너 개 정도로 비싸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 남자만의 장점을 부각하라
“수학 공부를 할 때 여학생은 공식을 먼저 외우고 문제를 풀어요. 남학생들은 문제를 풀면서 공식을 자연스럽게 익히죠.”
박 군은 수학 공부법의 차이가 남녀 학생들의 전반적인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학생들은 교사가 말해주는 것, 학습지에 정리된 것을 반드시 외우기 때문에 정해진 틀 안에서 외워서 쓰는 문제에 강하다. 반면 남학생들은 스스로 문제를 풀면서 원리를 익히는 스타일이라 깊이 생각해서 풀어야 하는 응용문제에 강하다는 것이다. 박 군은 “여학생이 수동적인 반면, 남학생은 능동적인 편”이라고 분석했다.
김준규 군도 “남학생이 문제집을 더 많이 풀고 정해진 양을 풀어내려는 의지도 강하다”라고 말했다. 김 군은 시험을 치기 3주 전부터 과목당 두세 권의 문제집을 푼다. 김 군 주위의 친구들 가운데도 문제집을 풀며 스스로 공부하는 남학생이 많다.
남학생은 혼자 공부하기보다 함께 공부하는 편을 선호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독서실을 다니거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하는 식이다. 공부하다 지루할 때 옆 친구를 보며 자극을 얻고,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남학생은 체력 면에서 여학생보다 강하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시험기간에도 농구나 축구를 즐기는 남학생은 기말고사 때 위력을 발휘한다. 5월 수행평가 기간에 쉼 없이 달려온 여학생은 기말고사 때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윤 군은 “기말고사 전날에는 보통 새벽 3, 4시까지 공부하는데, 주변 여학생들은 깜박 잠이 들었다가 몇 시간씩 못 깨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