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판 정승 1명 없는 경주 최부잣집
어떻게 한국의 명문가가 됐을까
한국의 명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은 벼슬이 높아야 명문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집의 선조 또는 집안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로 명문가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얼마나 진선미(眞善美)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것의 실증적인 자료는 바로 ‘고택(古宅)’이다. 서구화와 산업화의 거센 압력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고택을 유지한다는 것은 진정한 명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내용을 논술과 관련해 생각해보자.
(가) 다른 도시도 아닌 천년 고도 경주에서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의 명가가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경주 최부잣집의 경륜과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최부잣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 내지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셋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을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44쪽)
(나) 1573년 9월 학봉 김성일이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선조가 경연장에서 “경들은 나를 전대(前代)의 어느 임금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정언 정이주가 대답하기를 “요순 같은 분입니다”라고 하자, 학봉이 “요순도 될 수 있고 걸주(桀紂)도 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했다. 임금이 “요순과 걸주가 이와 같이 비슷한가?”라고 물으니, 학봉이 “전하께서 스스로 성인인 체하고 간언(諫言)을 거절하는 병통이 있으시니 이것은 걸주가 망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하였다. 이에 주상이 얼굴빛을 바꾸고 고쳐 앉았으며 경연에 있던 사람들이 벌벌 떨었다. (281쪽)
위 글 (가)는 경주 최부잣집의 명문가 이야기다. 그 집안은 여섯 가지 가훈을 삶의 원칙으로 실천한다. 이 원칙들은 ‘상생의 원리’로 대표된다. (나)는 사간원 정언인 김성일의 선비정신을 보여준다. 임금에게 직언하는 강직한 성품이 그것이다.
이제 (가)와 (나)를 바탕으로 스스로 논술 문제를 만들고 답안까지 작성해보자.
① ‘(가)의 최부잣집이 명문가가 된 이유를 제시하고, 그의 벼슬에 대한 인식을 밝히시오’를 생각해보자.
(가)의 집안이 명문가인 이유는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상생의 원리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최부잣집의 상생의 원리는 낮은 소작료, 빈민구제, 후한 과객 대접으로 대표된다. 주목할 점은 과객에게는 후하게 대접했으나 정작 자신의 집안 살림에는 박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혜택 받은 자들의 사회적 책임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만난다. 또한 (가)는 진사를 넘어서는 벼슬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높은 벼슬은 당쟁에 휩쓸려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통찰력에서 나온 산물이다.
② ‘(나)의 내용에서 선비 정신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것이 오늘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시하시오’를 만들어보자.
(나)는 임금에게 직언하는 강직한 성품을 선비정신으로 본다. 곧은 도리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도리를 굽혀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선비 정신의 정수를 확인한다. 오늘날 우리의 상류층들은 자기 보존을 위한 남루한 처세를 발휘한다. 이런 정신은 진정한 상류층으로서의 품위를 상실하게 한다. 요즘 세태에 비춰 볼 때 (나)의 강직한 직언은 눈부신 삶의 철학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강릉의 선교장, 충남 외암 마을의 예안 이씨 종가, 전북 익산 망모당, 경남 거창의 동계고택,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등도 명문가로 다룬다. 이 책의 필자는 역사성, 도덕성, 인물성이 충족되어야 명문가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 명문가 고택의 심층적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는 풍수 사상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풍수의 핵심이다. 우리는 다시 명문가와 고택의 불가분성을 확인한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