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시작
1-⑴: 다음은 무엇을 그린 그림처럼 보이는가?[국어 생활(지학사), 국어 생활과 사고]
1-⑵: 이번에는 이 그림이 ‘말 탄 기사’를 그린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가정하고 그림을 다시 보자. 어떻게 보이는가?
아까보다는 훨씬 망설임이나 혼란이 줄어들고 정말 ‘말 탄 기사’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말 탄 기사’라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교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 글은 언어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에 의해 설정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분해하여 본다. 즉, 언어가 사고를 주조(鑄造)한다는 관점이다.
▒ 뒤집어 보자
언제나 언어가 생각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 상황을 보자.
<상황 1> 상민이는 지난주에 금강산을 다녀와서 그 아름다운 경치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막상 그때의 감흥과 느낌을 설명하려니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상황 2> 민수는 요즘 큰 고민이 하나 있다. 여자 친구가 자꾸 자기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높은 산을 가리키며 “저만큼”이라고 했더니, “겨우?” 하면서 삐쳐서는 말도 안 하는 것이다.
<상황 3> 돌이 안 된 아름이는 어려서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엄마 손을 끌어당겨 그 물건이 있는 데까지 함께 간다.
<상황 1>은 생각은 있는데 그것을 정확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며, <상황 2>는 대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범주가 한정되어 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상황 3>은 지각이나 사고의 발달이 언어보다 먼저인 경우이다. 이렇게 보면 언어보다는 인간의 사고가 먼저라고 말할 수 있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사실 언어와 사고를 생각해 보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방적으로 만들거나 영향을 주는 관계라고 볼 수 없다. 앞의 두 관점은 모두 타당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 한쪽 측면만 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언어가 사고를 형성하기도 하고, 언어 없이 사고가 이루어지거나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이기도 하다.
음악가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작곡을 한다. 언어 없이도 사고와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이력서를 보면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 사고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게 하는 사례이다. 그리고 깜짝 놀랐을 경우 무의식적으로 외치는 소리는 사고하지 않고 발화하는 예가 되며, 어린이들은 언어를 통해 사고력이 향상되고 사고력이 향상되면 복잡한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언어 능력이 발달한다.
언어학자 사피어는 “인간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객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표현의 수단만은 아니다. 실세계(實世界)라고 하는 것은 언어 관습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언어가 노출시키고 분절시켜 놓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예를 들면, 무지개 색이 일곱 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색깔을 분류하는 말이 일곱 가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서로 인접하고 있는 색, 예컨대 녹색과 청색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경계선은 아주 녹색도 아주 청색도 아니다. 그 부분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모호한 색깔도 분명히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색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무지개 색은 수십 수백 가지로도 분류될 수 있다.[국어 생활(지학사), 국어 생활과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