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대입논술, 이것만은 알아두자

  • 입력 2008년 6월 30일 02시 57분


■ 자연계 학생 논리적 토의하기

유전적 다양성 키우려면 여러 동물원에 분산사육? 유전공학 기술 이용?

치타의 종 보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최근에 상담한 한 학생은 2학기 수시 논술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논술학원을 찾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관뒀다고 한다. 학원 수업이 강사가 배포한 문제를 풀고, 모범답안을 외우는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기회가 올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지식적으로 학생을 억압하는 강사들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토의 수업은 논술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며, 최소한 강의 자체보다 적절한 방식이다.

논술을 위한 토의 수업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학생들의 추론 능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설계된 제시문이 주어져야 한다. 제시문은 글로 주어지든 강의로 주어지든 상관없다.

다음은 토론이다. 토의 결과는 항상 강사와의 토론을 거쳐 양측 누군가는 승리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강사는 토론에 관해 훈련받은 상태여야 하는데 여기서 그 훈련이라는 것은 논리적 사고 훈련을 의미한다.

아래는 토의를 위한 제시문과 토의 결과 학생들이 낼 만한 의견, 이에 대한 강사의 논리적 반박(질문)을 간략히 제시하고 있다. 특히 강사는 반박할 때 ‘지식의 부족’이 아닌 ‘생각의 부족’이 드러나도록 질문해야 한다.

○ 토의 논제

아래 제시문 세 가지는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다. 제시문을 읽고 유전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라.

○ 제시문

(1) 어느 두 사람이 근친 관계인지 알고 싶다면 두 사람의 피 속에 들어 있는 총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비교 분석하면 된다. 이때 비교 항목의 80% 이상 같다면 근친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 중에서 치타는 어떨까? 지구에서 살고 있는 모든 치타 중에서 임의로 두 마리를 골라 같은 방식으로 분석하면 비교 항목의 99%가 같게 나온다. 모두 클론(clone)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종의 보전을 위한 우리의 선택 방법은 치타를 가급적 많은 동물원에 분산 사육하는 것이다.

(2) 1970년 미국에서 재배되는 전체 옥수수 중 15%가 곰팡이에 의해 쓰러졌다. 당시 환산가치로 10억 달러의 피해를 끼쳤는데, 이듬해 새로운 옥수수 품종을 심고서야 곰팡이의 번성을 막을 수 있었다.

(3) 스페인은 멜론의 고향이다. 수십 년 전에는 스페인에서 재배되는 멜론의 종류가 400가지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멜론을 집중적으로 유럽과 북미에 수출하면서부터 현재는 5∼7가지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 학생의 의견이나 주장

(1)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치타의 유전적 변이를 조장한다.

(2) 유전적으로 다양하지 못한 생물에게 인위적으로 환경 스트레스를 가하여 빠른 진화의 동기를 부여한다.

(3)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4) 곰팡이와 같은 다른 종에 해를 끼치는 생물을 죽이는 기술을 개발한다.

(5) 이익을 줄이고 품종을 보전하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교육한다.

○ 의견에 대한 반박

(1) 논점을 벗어나고 있다. 유전공학이 유전적 다양성에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우리는 아직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불확실한 논거가 방안이 될 수 있는가?

(2) 유전적 다양성은 시급한 문제인 데 반해 진화는 장기적 해결 방법이다. 어떻게 단기적 필요의 문제를 장기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가?

(3) 원론적인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4)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자고 외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죽이자는 방법이 선택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닌가?

(5) 그래서 자본주의를 포기하자는 것인가?

강사는 추가적으로 다음 질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1) 인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타는 과연 생존할 수 있겠는가?

(2) 유전적 다양성에 관한 고민이 시급한 문제라면 이는 우선적으로 식량이 되는 동식물을 대상으로 걱정하기 때문이 아닌가?

(3) 세계화는 유전적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 과학, 논술을 만나다

이 코너를 효과적으로 공부하려면 동국대 2006학년도 2학기 수시 문항3 기출문제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해당 대학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환경-획득형질은 유전자를 바꿀 수 있나

대입 논술에 등장하는 유전학 관련 내용은 ‘유전적 다양성>유전자 결정론>유전자 프라이버시>멘델 유전학’ 순으로 출제 비중이 높다.

1. 멘델리즘 vs 다위니즘

학자들은 인위적으로 농작물과 가축의 품종을 개발해 왔다. 이러한 인위적 선택이 실제 자연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한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뛰어난 학자라고 할지라도 인위적으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형질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위적으로 무한 번을 선택해도 날개 달린 토끼는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다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멘델은 유전학을 만든 사람이다. 유전학은 자손의 형질이 어버이로 인해 나타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경과해도 어떤 종으로부터 새로운 종이 태어날 수 없다는 명제가 멘델리즘의 핵심이다. 그러나 다위니즘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원론적으로 보면 멘델리즘은 다위니즘과 대립한다. 대립과 갈등은 논술의 주된 소재지만, 멘델리즘과 다위니즘의 충돌은 대입 논술에서 다루기 어려울 것 같다. 오늘날 생물학의 현실은 불변이라는 유전학적 원리에도 불구하고 변화라는 진화의 원리도 인정하고 있어서 결국 두 사상은 화해할 수밖에 없는데, 화해가 이루어지는 방법이 대입 논술에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학문적이기 때문이다.

2. 논술에 등장하는 유전학의 여러 논제

그렇다면 대입 논술에서 다뤄지는 유전학적 이슈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기출 횟수를 근거로 더 중요한 키워드부터 지적하면, 먼저 ‘유전적 다양성’을 꼽을 수 있다.

이 무거운 주제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세명대 2008학년도 1학기 수시 한의예과)라는 지식적 질문에서 출발해서 △유전적 다양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가톨릭대 2008학년도 의과대학 모의논술고사 문제3 논제3, 숙명여대 2008학년도 수시2-1 문항4, 성균관대 2008학년도 정시 문제1-ⅰ) △현대 과학 기술은 유전적 다양성의 확보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인가?(동국대 2006학년도 2학기 수시 문제5, 서울대 2000학년도 수시 지필 농업생명과학대 논제3)라는 논제로 나아간다.

다음 키워드로 ‘유전자 결정론’을 들 수 있다. 이는 유전학을 기초로 우리 생각의 깊은 곳까지 침투한 결정론적 사고다. △어떤 행동이나 형질이 유전적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운명적이며 피할 수 없고, 치료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가?(동국대 2008학년도 모의 자연계 논술 문제3)로부터 시작하여 △지능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가?(동국대 2007학년도 1학기 수시 문제3, 중앙대 2002학년도 1학기 수시 Ⅴ-2) △반사회적인 성향은 유전의 결과인가?(중앙대 2007학년도 수시2-1 문제3-1)라는 논제로 나아간다. 더 나아가 △동료 혹은 집단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조차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인가?(고려대 2006학년도 수시2 자연계 언어논술 문항Ⅱ) 등 유전적 결정론을 확대하는 논제까지 출제됐다.

‘유전적 프라이버시’도 간과할 수 없는 키워드다. 해묵은 논제라고도 볼 수 있는 △우생학은 윤리적인가?(가톨릭대 2004학년도 정시 일반학생전형) 외에도 △개인의 유전정보를 활용하려는 사회적 주체가 늘어감에 따라 무엇을 혹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경희대 2002학년도 정시 교차불가능학부)라는 논점이 출제됐다. 특히 최근 들어 여러 국가에서 인간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허용 법안을 속속 승인하고 있는데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대입 논술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입 논술에 등장하는 유전학은 위와 같은 논점을 중심으로 출제되지만 유전학적 지식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출제 빈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실험 결과를 멘델의 법칙으로 해석해야 하는 문제(성균관대 2009학년도 모의논술고사 문제2) △유전학 실험에 필요한 순종 실험동물에 관련된 문제(건국대 2008학년도 2학기 수시 문항1) △유전적 문제를 통계적으로 다루는 문제(숭실대 2008학년도 2학기 수시 문제3, 성균관대 2008학년도 정시 문제1-ⅱ, ⅲ) 등 아주 다양한 논제가 출제되고 있다.

3. 후성학적 연구는 유전자와 환경 간의 대립을 중재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유전자에게 물어보라’는 구호는 옛것이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형질이 유전이 된다고 해서 그 정보가 모두 DNA 염기서열에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즉, 평소의 식사나 인생 역정에서부터 인공수정과 같은 최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요인이 유전자의 활동을 변화시킨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원인으로 변화된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 분야를 ‘후성학(epigenetics·後成學)’이라고 한다.

다음 기출문제를 후성학의 관점에서 만나보자. 동국대 2006학년도 2학기 수시 문항3이다. 논제는 ‘현재와 같이 모든 기린의 목이 일률적으로 다 같이 길게 진화된 과정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입장에서 각각 설명하고, 두 이론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시오’이다.

200년 전 프랑스의 라마르크는 살아가면서 얻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가령 기린은 높은 나무의 부드러운 잎을 먹기 위해 목을 내밀다가 그 노력의 결과가 자손에게 전달되면서 결국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라마르크 진화론은 많은 논란 속에 50년 후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 자리를 잃고 유명무실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획득형질의 유전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실험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진화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가령 초파리의 배아에 순간적으로 열을 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실제 실험에서는 빨간 눈을 가진 초파리가 나타났으며 놀랍게도 그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됐다. 잠깐이라도 열을 받았기 때문에 기능이 손상된 초파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정도는 예상할 수 있으나, 그 ‘빨간 눈’ 형질이 유전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 얻은 유전적 형질이 자손에게 전달된 경우로 이해할 수 있는데, 아마 강한 열이 돌연변이를 만든다는 소문이 우리 사회에 퍼지면 난리가 날 것이다.

4. 자살자의 유전자도 처음에는 정상이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어느 연구팀이 어릴 때 학대를 받고 성장한 후 자살했던 사람들과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면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뇌를 비교 분석했다. 이때 감정적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알려진 해마 조직을 대상으로 리보핵산의 한 종류인 rRNA를 암호화 하는 유전자 부위의 메틸화 정도를 조사하였다. 일반적으로 메틸기가 많이 붙어 있으면 그 유전자는 불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역반응인 탈메틸화 반응의 활성이 너무 약하여 한 번 메틸기가 붙게 되면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메틸기로 야기되는 염색체의 구조 변화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밝혀졌다.

몬트리올의 연구팀이 발견한 사실은 자살자 그룹에서 메틸화 정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것인데, 실험의 대조군으로서 감정과 무관한 뇌 조직을 선택하여 비교 분석하였을 때에는 자살자 그룹과 사고사 그룹 간에 메틸화 정도에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연구팀은 유년기에 받은 학대와 감정적 상처로 해마 조직의 메틸화가 진행될 수 있으며, 그 이후의 삶 동안 감정 조절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동안 형질의 변화는 DNA 염기서열의 변화, 즉 돌연변이, 재조합, 전이인자 등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더라도 유전자의 기능이 변할 수 있으며 이 변화가 어버이로부터 자손에게 전해질 수 있음이 후성학적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후성학적 자료들, 즉 획득형질의 유전 방식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DNA에 메틸기가 붙거나 유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에 메틸기가 붙음으로써 결국 염색체의 구조가 변하고, 그렇게 바뀐 구조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일어난다.

5. 라마르크의 이론이 부활하고 있다

이러한 획득형질의 유전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어떤 가설에 따르면, 무작위적 유전자 돌연변이에 기초한 다윈 진화론으로는 특정 생물이 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획득형질의 유전이 이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의미는 이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더욱 건강한 인류가 나타나기를 꿈꾸는 우생학의 이론적 기초는 유전적 결정론이다. 유전자는 가문, 혈통, 혈액형, 피부색, 우랄알타이족, 지역, 민족, 국가, 문화, 예술 등 각종 우월주의, 심지어 모 개그맨이 딸을 낳았다며 걱정을 받는 풍조, 유행어 ‘상놈이 그렇지’ 등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왔다.

이러한 우월주의에 맞서 교육이나 환경의 가치를 중시하는 다양한 상대주의적 사상이 있다. 상대주의적 사상의 이론적 기초는 주로 인간의 유전자가 곰팡이보다 조금 많은 2만 개뿐이라는 점, 인간의 복잡성은 유전자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철학적 기초, 환경의 중요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실제 관찰 사례-특수 환경에서 자란 아동, 인간과 동물의 비교 성장 실험, 일란성 쌍생아 연구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 여기에 후성학적 연구가 또 하나의 큰 힘을 보태줄 것이다. 그 근거는 유전자의 종류와 우열을 불문하고 환경에 의해 메틸화가 진행되고 유전된다면, 여러분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형질이 특정 유전자의 존재 유무에 따른 결과인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음이 분명하며, 환경의 영향으로 메틸기가 붙을 수 있다면 환경을 바꾸어 메틸기를 떼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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