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생 자녀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한다. 수학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못 풀겠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떤 생각이 들까.한글을 일찌감치 깨친 자녀가 수학 공식을 알고도 문제의 의미를 몰라 헤매는 경우가 있다.동음이의어의 뜻을 잘못 해석해 동문서답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런 문제점을 푸는 열쇠는 바로 ‘한자’다. 교과 이해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한자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서당식 암기교육은 금물… 그림카드 활용해 기본부터
○ 한자에 눈뜨면 원리도 보인다
한글로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생들의 학습장애는 ‘한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자로 된 우리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등 5학년 과학시간에 나오는 사암과 역암을 예로 들어 보자. ‘모래 사, 조약돌 역’ 자에 ‘바위 암’ 자를 합친 한자 단어라는 걸 모르는 학생은 무턱대고 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암석의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를 아는 학생은 이름에서부터 그 암석의 생성원리까지 유추할 수 있다. 한자의 뜻을 파악하면 교과 내용에 대한 이해도 빨라지고, 단순 암기만 하던 학습 방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이름에서부터 개념과 원리를 배우니 공부에 대한 흥미도 붙는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삼각형, 원주, 예각 등 대부분 개념이 한자로 표현되어 있어 그 뜻을 떠올리면 개념 파악이 쉽다. 스스로 교육연구소 어문팀 강유정 선임연구원은 “특히 한자어로 된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자를 아는 학생과 모르는 학생 간의 학업 능력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창의적 사고와 논리력을 키울 수 있는 것도 한자학습의 장점이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단어 자체에서 그 뜻과 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이 흐르는 시냇물, 불이 피어오르는 모닥불 그림을 비슷한 모양의 한자어와 연결하는 놀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쉴 휴(休. 사람 인(人)+나무 목(木))와 같이 각기 다른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회의문자는 초등학교 고학년생의 논리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
한자를 통해 다양한 동음이의어를 알고 있는 학생은 어휘력이나 독해력 면에서도 탁월한 강점을 보인다.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지닌 사자성어, 고사성어로 학습의 범위를 넓히면 중국 문화와 역사까지 동시에 배울 수 있어 배경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 ‘그림카드’와 ‘한자일기’로 놀이하듯 공부하기
초등학생 한자 학습은 ‘흥미’ 위주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자급수시험이나 자격증을 목표로 무조건 외우기만 하는 서당식 암기공부는 금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은 사물의 형태를 본뜬 상형문자 위주로 기초 낱말 50∼200여 개(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 검정시험 기준 7∼8급)를 학습하는 것이 좋다. 사람의 신체나 자연, 주변 사물에 대한 그림을 활용해 그림이 글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 효과적이다. 한자와 뜻을 연결하는 글자 맞추기나 크게 쓴 한자를 잘라 다시 맞추는 한자 퍼즐게임(그래픽 참조) 등을 활용해보자.
초등학교 고학년생은 600자(5급) 정도의 기본 한자를 익힌 다음 한자어나 고사성어로 학습범위를 넓혀가도록 한다. ‘단어장’을 만들어 교과서에 나온 한자어를 한번씩 따라 써보는 것이 좋다. 일기나 알림장을 한자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한글로 쓰되 한 문장에서 쉬운 단어 2, 3개를 한자어로 쓰도록 지도한다. 물 수(水), 말씀 언(言) 등 같은 부수를 갖는 한자는 의미가 비슷한 경우가 많으므로 함께 엮어 공부하도록 한다.
(도움말: JEI 재능교육, ‘한자 공부 일기로 한다’의 저자 서울 내발산초등학교 진철용 교사)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