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직원 “20, 30대 2명이 윤씨를 이모라 불러”
경찰, 납치 가능성 알고도 뒤늦게 수사 착수
지난달 17일 인천 강화군 은행에서 1억 원을 인출한 뒤 실종된 윤복희(47·여) 씨와 윤 씨의 딸 김선영(16) 양이 실종 1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인천지방경찰청은 1일 오전 10시 50분경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해안 1제방 도로 주변 갈대밭에서 윤 씨 모녀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윤 씨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실종 직후 윤 씨의 휴대전화 전원이 끊긴 강화군 송해면에서 9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평소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외진 곳이다.
경찰에 따르면 윤 씨 모녀는 실종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으며 목이 졸리거나 흉기에 찔린 외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윤 씨는 반듯이 누운 상태로, 김 양은 윤 씨의 시신에서 10m 떨어진 곳에 엎어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윤 씨 모녀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돼 있었으며 윤 씨의 운동화는 시신에서 5m 정도 떨어져 있었다.
▽20, 30대 남자 2명 추적=경찰은 윤 씨가 실종되기 직전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윤 씨의 승용차에 타고 있던 20, 30대 남자 2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윤 씨가 돈을 인출한 은행의 직원들은 “현금을 윤 씨의 승용차 조수석에 실으려는데 승용차 밖에 서 있던 남자가 윤 씨가 보는 앞에서 우리를 보고 ‘우리 이모님 도와주기 위해 오셨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윤 씨 모녀가 실종되기 한 달 전 정장 차림의 20대 남자 2명과 함께 윤 씨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봤다는 이웃 주민의 진술에 따라 이들이 은행에서 목격된 남자들과 동일 인물인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은행에서 목격된 남자들이 실종 당일 윤 씨와 통화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윤 씨의 휴대전화와 집 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또 윤 씨가 실종되기 2개월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진 뒤 받은 보험금 1억 원과 남편이 생전에 인삼을 재배해 번 4억 원 등 모두 5억 원가량을 예금해 놓은 것을 범인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윤 씨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윤 씨 모녀가 실종된 후 윤 씨의 승용차가 발견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모 빌라 주차장과 윤 씨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창후리 일대 주민들을 상대로 목격자를 찾고 있다.
경찰은 창후리 일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범행에 이용된 차량도 확인하고 있다.
▽딸까지 살해한 이유는=범인들이 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윤 씨만 납치해도 되는데 굳이 윤 씨의 딸까지 불러 살해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윤 씨는 지난달 17일 은행에서 현금을 찾기 전 딸이 다니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딸을 조퇴시켰다.
경찰에 따르면 윤 씨는 김 양의 담임교사(41)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 사망과 관련해 보험처리 문제로 딸이 있어야 한다”며 조퇴를 요청했다.
이후 윤 씨가 돈을 인출한 지 1시간이 지난 뒤 윤 씨 모녀의 휴대전화는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와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 부근에서 각각 끊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김 양을 조퇴시킨 뒤 함께 살해한 것으로 미루어 범인들이 윤 씨 모녀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범인들이 윤 씨의 계좌에 있는 5억 원 중 1억 원만 인출한 뒤 윤 씨 모녀를 살해한 것도 의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인출하면 돈을 옮기는 데 불편하고 은행 직원의 오해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에 나눠 찾으려고 했으나 윤 씨가 말을 듣지 않아 살해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현금 1억 원을 인출한 윤 씨가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신고 접수 1시간여 만에 알고도 6시간이 지나서야 수사에 나서는 등 초동수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화=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