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시위대 몸 더듬고 심한 성적모욕
독재시대 계엄군 비유할땐 자괴감도”
시위 현장 출동 여경들 ‘슬픈 여경의 날’
《“그때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장애인 머리채 잡고 끌고 가는 여경’으로 지목됐던 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98제대 소속 이모(27) 순경.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문제의 동영상을 봤을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고 했다.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하던 장애인 여성을 인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 여성이 여경들의 팔을 돌아가면서 물었고 그것을 막았을 뿐인데….”》
정신을 차린 그는 기사를 처음 쓴 인터넷매체 소속 기자에게 전화해 항의했다. “그 기자는 ‘사진이 그렇게 보여서 썼다’는 말만 반복할 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정보도조차 하지 않더라”고 이 순경은 전했다.
그는 “나 자신이 떳떳하니 이번 사건 또한 좋은 결과로 마무리될 것으로 믿는다”면서도 “시위대와 경찰 사이가 이런 일로 서로 적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부대 소속 한모(29·여) 순경도 시위대에 ‘방송녀’라는 조롱을 받으며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방송차를 타고 “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는 “처음 방송요원을 할 때는 TV에서 보는 아나운서처럼 예쁘게 방송문안대로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방송기계가 고장 날 정도로 쉴 틈 없이 뛰고 매순간 고민을 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편한 데 있으니 좋으냐’고 말하는 시위대의 생각과 달리 경찰 방송차는 시위대 방송차보다도 훨씬 열악하다”며 “매연으로 인해 항상 쇳가루가 목에 걸린 기분으로 방송을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 순경과 한 순경이 속한 98제대는 여경으로만 구성된 부대로 시위 현장에서 불법 행동을 한 청소년, 장애인, 유모차를 이끌고 나온 여성 시위자를 상대한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이들은 쉬는 날에도 맘 편하게 쉴 수가 없다.
갑자기 떨어지는 비상호출에 개인 생활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여경은 남자친구에게서 “여자친구 군대 보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시민들의 싸늘한 눈길이다.
“지금도 경찰 제복을 입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설렘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한 여경은 “누리꾼이 인터넷에 무심코 쓴 ‘폭력경찰’이라는 말 한마디에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성적인 모욕도 이들을 지치게 한다.
이들은 특정 신체 부위를 비하하는 표현에서부터 “창녀들은 꺼져라” 등과 같은 노골적인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부 여경은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는 몸을 더듬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한 여경은 “불법을 저지르는 시위대를 최소한도로 저지하는 경찰들을 5·18민주화운동 때 총 든 계엄군과 비교하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경은 “‘민주시민 함께해요’라고 외치는 시위대들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들을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행동에는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며 한숨지었다.
여경 창설 62주년을 맞은 1일 98제대 여경들은 하루라도 빨리 과격 폭력시위가 사라지기를 염원한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