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이 포털사이트에 올라 악의적 댓글이 아주 많이 달려 피해 확산이 예상된다면 피해자의 요청이 없어도 포털 측이 해당 게시물을 삭제할 의무가 있다는 2일 법원의 판단은 다시 한 번 포털 측에 게시물 관리 책임을 엄중히 물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법원은 NHN 측은 1000만 원, 다음커뮤니케이션은 700만 원, SK커뮤니케이션즈는 800만 원, 야후코리아는 500만 원을 A 씨에게 각각 물어주라고 명령했다.
이번 판결의 요지는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이 게시돼 있다는 것을 포털 측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항상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해당 게시물과 관련해 누군가가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예외적’ 상황이라면 굳이 피해자 측의 요청이 없어도 포털 측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로 인해 누군가가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정황들로 해당 게시물에 대한 △높은 조회수 △많은 댓글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관련 언론 보도 등을 들었다.
법원은 또 판결을 통해 포털 측은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을 얼마든지 신속하게 삭제하거나 검색을 차단할 수 있으며 그럴 권한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포털 측이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기술적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이고 누리꾼들과 체결한 약관에 따라 그럴 권한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털 측은 피해자와 관련된 게시물을 전면적으로 삭제하거나 그 검색을 차단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삭제 또는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또 포털 측도 언론매체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존 판결을 재확인했다. 포털 측이 언론사로부터 공급받은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을 특정 위치에 적극적으로 배치해 누리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면 이는 유사편집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포털은 단순히 기사를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편집과 배포 기능을 갖춘 일종의 언론매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최근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광고주 협박 글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온 이번 판결이 검찰의 판단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