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通 테마筒]‘비합리를 낳는 합리성’의 아이러니

  • 입력 2008년 7월 7일 02시 59분


1. 현대 사회와 합리성

‘합리적’ 또는 ‘합리성’이라는 말처럼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말도 없다. 요즘 사람들은 ‘합리적’이라고 하면 최고의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비합리적’이라고 하면 불쾌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은 ‘합리성’을 맹목적으로 신봉한다. 가계의 운영에서부터 기업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합리성’을 최고의 요소로 여긴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효율성’의 다른 이름이다. 효율성이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성인 것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도구적 합리성이다. 도구적 합리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인간 소외 등 비합리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2. 근대와 합리성의 시대

근대를 규정짓는 개념은 단연 ‘이성에 대한 믿음과 합리주의’이다. 근대는 중세의 신 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유로 전환한 시기다. 사람들은 사회적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계획하고 결정할 근거를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됐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사유의 바탕이 곧 이성에 대한 믿음과 합리주의다.

근대의 문을 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를 세웠다. 이성적 인간이 이성을 통해 명석하게 인지하는 것은 참이며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버가 말한 ‘문화적 합리화’다. 이 경우의 합리화는 ‘탈마술화’, 즉 미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사고가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근대의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확대함으로써 귀납법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발견했다. 덕분에 자연과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뒤이어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여러 사회과학도 이러한 방법론을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분석, 종합, 분류, 체계화, 가설의 검증 및 법칙화가 일반화됐다. 타인으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해방된 자율적인 인간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3. 근대와 도구적 합리성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합리성은 ‘도구적 합리성’이다. 도구적 합리성은 목표에 이르는 최적의 수단을 추구하는 것이다. 관료적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모두 이러한 합리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관료제는 산업 사회의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합리적 조직체다. 국가나 회사에서 조직의 업무 처리 절차를 정하고 부서별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 조직의 운영방식이다. 관료제는 직무에 따라 의무와 책임을 분명하고 자세하게 규정해 주는데, 분업과 업무의 전문화가 특징이다.

그러나 관료제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현상이 발생하거나 인간 소외 현상, 비능률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경제 체제로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화하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는 개인이 사용 가치가 아닌 교환 가치로 평가되면서 이윤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가능성도 있다.

4. 현대 사회의 합리성과 인간 소외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현대성의 중요한 특징을 ‘합리화(rationalization)’로 보고, 합리화가 현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맥도날드는 줄서기, 제한된 메뉴 빨리 먹기 등으로 소비자들을 통제한다. 또, 정확한 시스템에 의해 종업원들을 통제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시간적·지리적 제한을 받지 않고 쉽게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만든다. 맥도날드에서 직원과 고객은 하나의 공장 조립 라인처럼 정해진 틀에 따라 사고하고, 기대하고, 행동한다.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맥도날드가 결국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기제(機制·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효율성 △예측 가능성 △계량성 △무인 기술로의 대체라는 특성으로 요약되는 ‘맥도날드화’의 원리가 서비스, 교육, 레저, 정치, 종교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맥도날드화와 그 근대적 특징은 미래에도 존재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합리성을 추구할수록 비합리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명우 ㈜엘림에듀 대표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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