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단군신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단군신화를 예전부터 전해오는 허구적 서사로만 받아들인다면 그것의 본래 의미는 퇴색하고 말 것이다.
▒ 생각의 시작
하느님(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바람, 구름, 비를 다스리는 신들과 신하들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를 세우고 사람을 다스렸다 그러던 중 호랑이와 곰이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원하자 환웅이 마늘과 쑥을 주며 “그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호랑이는 이겨내지 못했고 곰은 여인이 되었다. 환웅은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분이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하였다. [문학 교과서, 삼국유사]
단군신화는 천상과 지상의 조화 속에서 군왕(群王)이 탄생한다는 내용으로 고대 신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신과 인간의 결합은 신화로서의 신성성을 내포한다. 또한 단군신화 속의 ‘천손(天孫) 하강 모티브’는 한국 서사문학의 전형이 된다는 점에 문학적인 의미가 있다. 이런 특징은 ‘주몽 신화’, ‘김수로왕 신화’ 등 건국 신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 영웅들이 등장하는 설화, 고전 영웅소설에서 주인공의 고귀한 혈통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군신화는 당대의 현실과 사람들의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역사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건국하였다.(중략) 신석기 시대 말인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의 요녕(랴오닝), 러시아의 아무르 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 토기 문화가 앞선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약 500년간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 시대로 넘어간다. 이때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으로,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단군신화는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조선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2007년에 개정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였으며, 그에 따라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개막을 기존의 기원전 10세기 무렵에서 기원전 15∼20세기로 앞당겨 기술하였다. 이로써 단군신화는 역사적 근거를 갖는 우리 민족 최초의 건국사(建國史)가 된 것이다.
▒ 뒤집어 보자
단군이 과연 실존 인물이었는가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과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단군 신화의 기록에 맞춘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의식한 의도적인 규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단군신화를 입증하는 사료가 부족한 것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 과정에서 고대사에 관련된 서적이 대거 사장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사에서 고조선을 생략하고 삼한(三韓), 삼국, 고려, 조선,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사로 한국사를 꿰어 맞추었다.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일제는 조선사편수회 사업이란 이름으로 고조선 관련 서적을 수집했다. 1910년 11월부터 14개월 동안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책이 무려 51만 종 20만 권이 넘었다고 한다. 그때 거두어들인 책은 모두 사라졌으며 그 후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는 신화로 축소되었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단군이 실재한 역사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단군과 고조선을 증명하는 사료와 유물들을 찾아야 한다. 최근 고조선 역사에 대한 남북 공동 연구가 진행 중이다. 남측의 단군학회와 북측의 조선역사학회는 2002년 이후 단군과 고조선 문제에 대한 공동연구 성과를 모아 ‘남북 학자들이 쓴 단군과 고조선 연구’를 펴냈다. 1993년 10월 북한 사회과학원은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동남쪽에서 민족의 시조 단군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북한 학계의 성과를 남북이 공유하여 고조선의 터전이었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문규 청솔 아우름 논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