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그만두고 3년 고통
왜곡된 정보믿은 가해자
사실 알고는 눈물로 후회
“내가 인터넷에서 발휘한 맹목적인 정의감이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 주십시오.”
2005년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 오른 기사와 댓글로 피해를 본 사건과 관련해 최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일부 승소 판결(배상액 3000만 원)을 받은 김명재(32)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본보 3일자 A1면 참조
“포털 게시물 피해 예상땐 당사자 요청 없어도 삭제”
▶본보 3일자 A5면 참조
구글, 컴퓨터가 뉴스 선택… ‘언론 행세’ 안해
2005년 5월 인터넷에는 김 씨와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살한 사연과 함께 김 씨의 개인정보(이름, 얼굴 사진, 휴대전화번호, 학교, 직장)가 공개됐다. 누리꾼들은 김 씨와 그가 다니던 학교, 직장에 무차별적인 비난을 쏟아냈고, 이로 인해 그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김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에서는 배상액이 1심보다 항소심에서 2배로 커진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내가 3년 동안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계열사에 취업한 뒤 야간대에 입학한 김 씨는 이 사건으로 한순간에 직장과 학교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재취업도 쉽지 않았다.
이후 그는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형이 운영하는 뮤지컬 극단을 돕거나 반(反)포털 성향의 인터넷 매체 및 단체 등에서 일해 왔다.
김 씨는 자신에 대한 사이버 폭력의 출발점은 많은 누리꾼이 근거 없는 사실을 그대로 믿고 실천한 ‘맹목적인 정의감’이었다고 했다.
“가해자인 한 30대 여성 간호사를 만나 ‘왜 나를 음해했느냐’고 물으니, ‘인터넷에 오른 글이 사실인 줄 알고 울분과 정의감을 느껴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하더군요. 가해자 80여 명 중 직접 만난 5명은 사실관계를 알고는 대부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순수한 개인들에게는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며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해지는 것을 방치하고 돈벌이를 한 포털과 인터넷상의 소문을 확인 없이 보도한 일부 언론이 미웠을 뿐”이라고 했다.
김 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근거 없는 왜곡과 비방을 지켜보면서 ‘그때의 악몽’을 떠올린다는 얘기도 했다.
“2005년 인터넷에서 저에 대한 글을 읽고 화가 난 사람 10여 명이 제가 다니던 학교로 찾아와 촛불시위를 하더군요. 이들은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는 물론 계열사에까지 전화를 걸어 ‘저를 쫓아내지 않으면 회사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어요. 1분에 8통 정도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그는 “누리꾼들은 아고라에서 다수결로 나에 대한 비난을 합리화했다”며 “그들은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믿었지만 결국 인간존중을 해치는 맹목적인 판단이었다”고 비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