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문화와 행동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수십 년 전의 학교와 학생은 현재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자녀를 따라 다녀보면 이해의 폭은 넓어지겠지만 바쁜 세상살이가 몸을 놓아주질 않는다. 요즘 학생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학부모와 자녀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이혜진 기자가 현장을 찾아간다.》
“치마폭은 좌우 1cm씩, 길이는 두 단 줄여주시고요, 윗옷 끝자락은 허리선에서 8cm 올려주세요.”
학교 앞 세탁소엔 ‘더 짧게, 더 타이트하게’란 구호성(?) 주문을 하는 여학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교복 개조 비용은 치마 3000∼5000원, 상의 1만 원가량. 두 달에 한 번꼴로 벌어지는 복장 단속이 다가오면 치마 길이를 늘였다가 단속 기간이 지나면 다시 줄이는 번거로움이 삶의 즐거움처럼 보인다. 한국판 ‘트랜스포머’다.
교복을 개조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보니 교복업체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슴과 허리, 힙의 라인을 확실히 잡음으로써 학생이 입맛에 따라 길이를 줄여도 원래 라인이 또렷이 살아있는 교복이 인기를 끈다. 같은 호수라도 ‘다른 브랜드보다 살짝 타이트하다’는 입소문이 돌면 해당 브랜드는 ‘대박’이 터진다.
일부 중고교생이 선호하는 교복 개조 스타일은 도대체 뭘까?
여학생 사이에선 이른바 ‘미니 교복’이 인기다. 치마는 무릎 위가 드러나도록 짧게 입는다. 상의는 엉덩이선까지 내려오는 흰색 박스 티셔츠를 안에다 입고, 그 위에 아주 타이트하고 작게 줄인 교복 상의를 마치 조끼처럼 입는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2가지. 안에 입은 셔츠 밑단이 밖으로 드러나야 하고, 상의 단추는 맨 위 하나만 채운다.
남학생에겐 ‘스키니 스타일’이 유행이다. 상의 밑단이 허리선 밑으로 내려오지 않도록 ‘짱뚱’하게 줄인다. 바지는 발목으로 갈수록 폭이 심하게 좁아지도록 입는다. 이렇게 개조한 교복은 일부 중고교생에게 ‘간지난다’(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로 ‘멋있다’는 뜻의 신세대 은어)는 평을 듣는다.
이런 차림으로 매일 아침 교문을 ‘무사히’ 들어설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선생님의 무서운 시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묘책이 없을 리 없다. 불시에 이뤄지는 복장검사에 대비해 여벌의 ‘제대로 된’ 교복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학생도 있다. 짧은 교복치마 위에 통이 크고 긴 치마를 덧입는 ‘교복 속 교복 입기’도 있다. 이 때문에 졸업하는 선배들이 남기고 가는 헌 교복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아, 궁금하다. 일부 중고교생은 왜 이렇게 교복을 개조하는 걸까? 단정한 교복이 오히려 단아하고 멋져 보일 텐데….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남다르게 보이고 싶다. 또 어떻게 해서든 더 날씬하고 ‘쫙 빠져’ 보이고 싶다. 교복은 더는 획일화의 상징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K고 2학년 A 양은 “우리 반은 절반 정도가 교복을 고쳐 입고 다녀요”라면서 “엄마로부터 ‘이게 교복이냐? 네가 공부하는 학생이냐. 너 대학 포기했냐?’는 꾸지람을 듣지만 신경 안 써요. 맘에 드는 교복을 입어야 학교 생활도 즐겁고 공부도 잘돼요”라고 말했다.
한때 교복 개조는 ‘노는’ 학생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엔 교복 변형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나 할까. “이제 교복 치마길이가 짧다고 학생들을 나무라기보단 차라리 속바지를 입으라고 지도해야 할 때”(서울 H고 여교사 P 씨)라는 견해도 있다.
교복 개조가 횡행하다 보니 아예 ‘대체 교복’을 맞추는 학교도 있다. 경기 호평고는 학부모, 학생, 교사 대표의 협의를 거쳐 디자인한 티셔츠를 대체 교복으로 정했다. 학교 마크와 이름표를 단 캐주얼하고 멋스러운 티셔츠를 교복 대신 입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복 변천사:
1983년 중고교생 교복자율화로 교복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 학생 지도의 어려움 등으로 교복은 1980년대 후반에 부활했다. 교복은 1990년대 중반까진 무채색 계통의 통 크고 헐렁한 스타일이 주를 이뤘지만 2000년대 초부터 패션 의상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치마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교복업계에 따르면 유행하는 교복 스타일은 3,4년 주기로 바뀐다. 엘리트학생복 디자인 팀장 이미경 씨는 “2000∼2001년 교복치마는 미니스커트처럼 짧아졌다. 2002년부터 다시 길어지기 시작해 2005년엔 발목까지 내려오는 ‘공주풍’ 스타일이 유행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교복치마는 다시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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