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경찰 “무혐의” 풀어줘… 중학 선후배 4명 영장
지난달 17일 인천 강화군 은행에서 1억 원을 인출한 뒤 납치됐던 윤복희(47) 씨와 윤 씨의 딸 김선영(16) 양은 동네 인근에 살던 20대 청년에게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사건 발생 24일 만인 11일 모녀 납치 살해사건 피의자인 안모(26), 하모(26), 이모(24), 연모(26) 씨를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검거 및 범행동기=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쏘나타 차량을 소유한 안 씨를 10일 오후 10시경 먼저 검거한 데 이어 강화도 애인 집에 숨어 있던 하 씨 등 3명을 11일 오전 8시 반까지 차례차례 붙잡아 긴급체포했다. 이번 범행을 주도한 안 씨는 어릴 때부터 33가구에 불과한 윤 씨 동네에 살던 이웃사촌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 씨는 윤 씨의 남편이 4월 교통사고로 숨져 1억 원의 보험금을 탔고, 윤 씨 집안이 인삼 재배로 부유했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안 씨 등은 살해 동기와 관련해 “유흥비 마련을 위해 4월 초부터 범행 모의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강화 K중학교 출신이자 동네 선후배 사이로, 범행 당일 납치와 살해에 가담한 사람은 안 씨, 하 씨, 이 씨 등 세 명이었다.
경찰은 피의자 중 안 씨와 하 씨가 “2006년 4월 강화읍내 모 다방 여종업원(19)을 납치, 살해하고 시신을 경기 시흥시 시화호 인근에 암매장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수색작업에 나섰다.
경찰은 당시 여종업원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안 씨와 하 씨를 조사했으나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해 풀어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범행 과정=경찰 조사결과 세 명은 지난달 17일 오전 윤 씨 집에 침입해 혼자 있던 윤 씨를 납치하고 은행에서 현금 1억 원을 인출하도록 한 뒤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윤 씨가 은행에서 돈을 찾는 동안 도망갈 수 없도록 학교에서 조퇴시킨 윤 씨의 딸을 인질 삼아 집에 감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2개조로 나눠 하 씨와 이 씨가 윤 씨를 무쏘 차량(윤 씨 소유)에 태워 은행으로 가 돈을 인출했고 안 씨가 쏘나타 차량으로 김 양을 집에 데리고 갔다.
윤 씨는 딸을 살리기 위해 은행에서 태연하게 돈을 찾았지만, 인출 직후인 지난달 17일 오후 1시경 자신의 무쏘 차량 안에서 목이 졸려 살해됐다. 딸 김 양은 어머니가 숨진 지 6시간 뒤 집에서 9km가량 떨어진 하점면 창후리 도로에서 목이 졸려 숨졌다. 이들은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윤 씨 모녀를 목 졸라 죽이고 시신을 창후리 외진 해안 둑에 버린 뒤 쏘나타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주민 제보=경찰은 안 씨가 범행 당일 윤 씨 집에서 114에 전화를 걸어 김 양의 학교 전화번호를 문의할 때 녹음된 테이프를 확보해 추적해왔다.
그러나 범인들이 사전에 범행을 워낙 치밀하게 계획한 때문인지 뚜렷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10일 숨진 윤 씨 모녀가 살던 송해면 하도리 주민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이던 경찰에게 A 씨가 “윤 씨 모녀가 실종되기 직전까지 마을 입구 주변에 주차돼 있던 쏘나타 승용차가 보이지 않는다”고 제보했다. 경찰은 이 차량의 번호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고, 결국 번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주민을 찾아냈다. 곧바로 차적 조회에 들어간 경찰은 이 차량의 소유자가 경기 안산시에 사는 안 씨로 확인됨에 따라 수사대를 그의 집으로 급파해 체포했다.
강화=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