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아이,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와 놀 궁리만 하는 아이…. 부모들의 근심거리인 ‘사춘기 증상’은 종류와 심각성이 가지각색이다. 엄마 4명이 자녀의 대표적인 사춘기 증상에 현명하게 대처한 경험을 소개했다.
○ 공부는 뒷전, 친구와 놀 궁리만 하는 아이
현재 고교 2년생인 아들은 사립초등학교를 거쳐 공립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방과 후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PC방에 가는데 나는 왜 학원에 가야 해?” 또는 “나는 왜 공부해야 돼?”라고 묻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성적은 추락하고 자존감도 잃어갔다.
나는 ‘저 친구들을 어떻게 떼놔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머리 속이 꽉 찼다. 청소년 상담 전문가를 찾았다. 아들을 데리고 함께 오라고 했지만 설득하는 게 문제였다.
“엄마는 너를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엄마를 위해서 같이 가주겠니.”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아들은 순순히 따라줬다.
성격유형검사나 학습유형검사를 통해 아들의 성격과 장단점, 적성 등을 옆집 아들 보듯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아들 친구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들의 시각에서 ‘쟤가 왜 좋을까’ ‘쟤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비로소 아들 시각에서 보면 마마보이 같은 모범생보다 저런 친구가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정숙·47)
○ 진로 문제로 갈등 빚는 아이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1학년 때 진로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외국어고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해왔고 법조인 또는 경영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느닷없이 과학고에 가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무척 놀랐다. 항상 말을 잘 듣던 아들이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아들이라기보다 ‘성숙한 남자’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함부로 대할 수 없겠구나’ 싶어 덜컥 겁도 났다. 그 후 사소한 일로 충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과학고 입시학원 두 군데에서 적성 및 학업능력 검사를 받아보면서 마음을 돌리게 됐다. 두 곳에서 모두 아들의 적성과 능력이 과학자 쪽에 맞는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들도 2년 동안 엄마와 아빠를 끈기 있게 설득했다. 요즘엔 ‘기왕 할 거 좀 더 일찍 시킬 걸’ 하는 후회도 든다. 그랬다면 나도 덜 미안하고, 아이도 덜 힘들지 않았을까?
(장승원·44)
○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아이
“이 옷 입어라.”
“싫어.”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은 내가 입히려는 옷을 덮어놓고 싫어하기 시작했다. 4학년 때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 옷만은 좋은 브랜드의 옷을 사입혀왔지만 딸은 서울 동대문 쇼핑몰에 가서 제 눈에 예쁜 옷을 사 입고 왔다. 단정한 니트 원피스를 벗어버리고 가슴팍에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커다랗게 그려진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내 취향의 옷을 입히는 것을 포기했다. 딸의 옷을 살 때는 꼭 딸을 데려갔다.
중학생이 되서야 타협점을 찾게 됐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지만, 내 취향대로 단정한 브랜드 옷을 사게 된것이다.
(지현숙·41)
○ 연예인 좋아하는 아이
중학교 3년생인 딸은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를 좋아한다. 동방신기가 가수인지도 몰랐지만 요즘엔 멤버 5명의 이름을 눈감고도 욀 수 있다. 딸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덕분이다. 요즘에는 “네가 좋아하는 시아준수는 본명이 김준수라며?” 또는 “엄마는 말수 적은 최강창민이 더 좋더라”라는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동방신기 사진집과 책이 나오면 딸에게 읽어보라고 주기도 한다. 콘서트 DVD라도 나올라치면 아들까지 네 식구가 앉아서 다 같이 감상한다. 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강형선·43)
○ 이성 친구를 사귀는 아이
고교 2년생 아들의 휴대전화에 ‘자기야, 보고 싶어’라는 문자가 왔다. 아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다”라고 잡아뗐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런 문자를 보내니?”라고 묻자 묵묵부답이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롯데월드에 간다는 아들에게 “넌 상관없는 애랑 그런 델 왜 가니?”라고 쏘아붙였다. 아들은 “상관 말라”며 화를 냈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엄마는 네가 쿨하게 말해줬음 좋겠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그 애가 떳떳하게 보여줄 만한 애가 아니라서 그런 거니?”
며칠 뒤 아들은 실토를 했다. ‘어디에서 만나서 언제부터 사귄 여자 친구’라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최정숙·47)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사춘기 자녀가 가장 싫어하는 부모의 행동은 무엇일까? 이지용(용문중 3년) 이영재(중앙중 3년) 군과 전소영(중앙중 3년) 김지연(동구여중 3년) 유다진(정신여중 1년) 강지현(상일여중 2년) 양 등 중학생 6명이 꼽은 ‘이런 행동만은 피해주세요’ 1∼3위를 살펴보자.》
1위는 시험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는 말이다. 특히 “너는 왜 이것밖에 못하니?(비하)” “OO네 집 아이는 잘한다는데 넌 왜 이 모양이니(비교)”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비꼬기)” 등은 부모가 피해야 할 ‘3비(非)’다.
김지연 양은 학교 시험을 망친 뒤 “너는 시험을 못 봤는데도 어쩜 그렇게 태평하니, 속도 참 편하다”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제가 첫째라서 부모님이 거는 기대가 너무 커요. 시험을 못 보면 며칠씩 가족들 간에 말수가 적어지고 분위기도 가라앉아요.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하지만, 이미 끝난 시험이니 마음을 비우려고 하는 데 엄마 눈엔 제가 참 편안해 보이나 봐요.”(김 양)
2위는 자녀도 아는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서 훈계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그만 봐라” “숙제는 다 했냐?” “공부 좀 해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영재 군은 “학생의 신분은 공부다. 공부를 잘할수록 직업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로 시작하는 엄마의 훈계가 지겹다. 이성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계속 듣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 그럴 때는 “이제 알아요” 또는 “어, 어”라고 건성으로 대답하게 된다.
3위는 자녀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부모로서는 자녀가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공부 외에 딴 데 신경을 쏟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라지만 자녀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전소영 양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면 “비밀번호가 뭐야”라고 물어보곤 알려주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뺏는 엄마의 행동이 싫다. 이영재 군은 “이상한 얘기도 안 하는데 친구들이랑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보려고 하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며 “내 아이한테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