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사이 수강생 40% 줄어들기도
경기 부천시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모(43·여) 씨는 요즘 하루 종일 좁은 사진관에서 두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2학년인 아들은 집으로 배달되는 수학 학습지를 몇 장 뒤적이다 이내 케이블방송의 만화채널을 보며 하루를 보낸다.
이 씨는 “올해 들어 하루에 2만∼3만 원 벌기도 힘들다 보니 두 달 전에 월 9만 원짜리 딸아이 피아노학원과 6만5000원짜리 아들아이 수학학원을 모두 끊고 학습지로 바꿨다”며 “애들이 학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기가 죽는지 밖에 나가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계 지출을 줄이는 데 마지노선인 자녀들의 사교육비마저 경기 침체 파고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사교육 시장의 성수기인 초중고교생의 방학이 시작됐지만 올해는 치솟는 물가와 유가로 사교육을 줄이는 가정이 속출하고 있는 것.
회사원 김태균(42·서울 용산구) 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두 딸의 공부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김 씨는 영어학원 20만 원, 피아노학원 16만 원, 학습지 6만 원 등 한 달에 42만 원을 큰딸의 사교육비로 썼다. 작은딸을 위해서도 역시 비슷한 사교육비를 지출했다.
김 씨는 “생활비와 학원비는 자고 나면 오르는데 회사 수당은 오히려 줄어 고육지책으로 학원을 끊었다”며 “그나마 지금은 초등학생이니까 겨우 가르치겠지만 중학생이 되면 어찌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지출 중단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경기 침체 여파를 적게 받던 학원들도 이제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부산의 한 영어전문 학원은 올해 초까지 800명에 육박하던 수강생이 지금은 500명 정도로 줄었다. 이에 따라 강의실을 6개 층에서 3개 층으로 줄이고 60명이던 강사도 20명으로 줄였다.
강사들에게는 ‘상담 전화’라는 명목으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특강을 듣도록 유도하게 하고, 수강생을 유치할 때마다 1명당 3만 원을 주는 학원도 등장했다.
수도권 외곽에서는 소규모 보습학원들이 매물로 속속 등장하자 학원 원장들 사이에서는 “외환위기 때 학원들이 줄줄이 망할 때랑 똑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마저 돌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독서학원을 운영하는 김현희(56) 씨는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학부모들이 사교육은 잘 줄이지 않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면서 “학원도 어렵다보니 학원비를 올려야 할 판인데 난감하다”고 말했다.
한편 방학 시즌을 이용한 해외 어학연수 캠프에도 예약 취소가 잇따르는 등 찬바람이 불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초등학생 유학원을 운영하는 제이슨 유 씨는 “매년 여름방학이면 한국 학생 수십 명이 연수를 왔는데 올해는 오겠다는 학생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1년 이상 머무르는 계획으로 외아들(9)을 필리핀으로 유학 보낸 주부 변미희(43) 씨도 마음을 바꿔 다음 달 개학에 맞춰 아들을 귀국시키기로 했다.
변 씨는 “처음에 힘들어하던 아이가 이제 막 적응해서 즐거워하는데 경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계획을 바꿨다”고 말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