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눈물 젖은 서울유학 재수의 길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1분


“노량진에서 눈물 젖은 ‘햇반’을 먹지 않고선 인생을 논하지 말라.”

경북 포항시에서 서울 노량진 입시학원가로 ‘원정’길에 오른 19세 여성 J 씨가 한 달 만에 얻은 교훈이다.

J 씨는 지난달 유명 입시학원을 찾아 상경했다. “포항에는 마땅한 입시학원도 없고, 대입 정보도 한참 뒤떨어진 지방에서 공부하려니 갑자기 위기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는 게 그녀의 말. 서울교육대가 목표인 만큼 서울에서 공부하면 왠지 미래가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J 씨는 3월 부산 지역의 모 대학 정보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수업을 들을수록 ‘이건 죽어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고교 3학년 땐 “교사가 되라”는 부모의 말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보다 더 듣기 싫었다. 그 때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되지만 지금이라도 결심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휴학계를 낸 J 씨는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대입에 다시 도전했다.

오전 6시 시계와 휴대전화에서 3분 간격으로 알람이 울린다. 굳게 결심했건만 잠은 벨보다 강하다. ‘이 빌어먹을 잠’이 어찌나 밀려오는지 늘 30분이 지나야 일어난다. 고시원 방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탓이다. 5평짜리 비좁은 방 한구석에 놓인 침대에서 조금만 몸부림을 해도 발목이 책상 모서리에 툭툭 걸린다. 자다가 깨는 일이 이젠 습관이 됐다. 그러나 다른 곳보다 월 10만 원이나 싼 이 방을 구했다는 게 감사하다. 빈 방이 없다고 문전박대를 당한 고시원만도 10곳이 넘으니….

샴푸, 헤어트리트먼트, 치약, 칫솔, 수건, 비누, 속옷을 양손 가득 들고 한 층에 하나씩 있는 공동 샤워장으로 향하지만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면 기다려야 한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때를 박박 밀고 싶어도 욕조가 없으니 안타깝다. 고시원 주변엔 목욕탕이 없다. J 씨는 버스를 타고 1시간 떨어진 사촌언니 집에 찾아가 염치 불구하고 때를 민 적도 있다.

아침식사는 햇반과 김치, 멸치볶음, 장조림으로 5분 만에 해치운다. 모두 장기보존이 가능한 음식이다. 아침을 먹을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어머니가 택배로 보내준 정성이 담긴 음식이다. 싱거운 계란국 하나 달랑 나오는 2800원짜리 학원 급식보단 맛있다.

바깥 공기를 쐴 요량으로 점심과 저녁식사는 학원 밖 식당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녀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D 식당만 찾는다. D 식당은 장당 3000원인 식권을 한꺼번에 10장 구입하면 4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세제, 햇반, 치약 같은 생필품은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이렇게 아껴도 고시원비 30만 원, 학원비 56만 원, 식비 및 기타 비용을 다 합치면 한 달 지출액은 110만 원이 넘는다. 돈을 보내달라는 문자를 엄마에게 보낼 때마다 불효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미어진다.

학원에선 아침 7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틀어박혀있다. 필기를 싫어하는 탓에 학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복사해 오려붙이며 그 자리에서 외우려고 노력한다. 한 달 동안 수학문제를 푸는 데만 스프링 달린 두꺼운 연습장 두 권을 썼다. 집에 돌아오면 출출한 배를 ‘오 예스’(초코파이의 일종) 한 개로 채우고 온라인 강의를 오전 2시까지 듣는다.

고시원 방바닥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봤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학원 수업을 들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힘들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 못 봤다”며 대입 재도전을 반대했던 오빠의 말이 생각나 가슴이 더 아프다.

외롭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고향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하지만, 막상 친구들을 만나면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할까봐 연락도 할 수 없다.

엄마와 자주 통화하지만 정작 마음속에 있는 말은 하지 못한다. “미안해. 고마워”란 엄마의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기 때문이다.

J 씨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시원한 바다에 빠져보는 거요. 내년 이맘때엔 멋진 남자친구와 바닷가에 가 있겠죠? 여기서 꼭 성공할 테니까요.”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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