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심장-뇌혈관질환 각각 24곳 지정
70억 예산 확보 연말부터 순차적 설치
지방에 사는 김병준(가명·63) 씨는 세수를 하다가 쓰러져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선 “뇌중풍(뇌졸중)이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바람에 김 씨 가족은 일단 환자를 한방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한의사는 막힌 뇌혈관을 뚫으려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김 씨는 6시간 만에 서울 대형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목숨을 건졌으나 전신 마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최근 응급처치가 늦어 목숨을 잃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례가 잇따르자 보건복지가족부가 전국 어디에서든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1시간 이내에 수술할 수 있는 응급수술시스템을 연내에 도입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를 위해 교통사고 등 외상응급사고, 응급심혈관계질환, 응급뇌혈관계질환 등 3개 질환에 대해 1시간 이내 수술이 가능한 응급특성화센터를 각각 24개씩 전국에 구성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처치 빨라야 목숨 건진다”=6월 현재 전국에 권역응급의료센터 16곳을 비롯해 전문응급의료센터 4곳, 지역센터 101곳, 지역응급의료기관 332곳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권역, 전문응급센터를 빼고는 대부분 수술실이 없다.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는 다시 큰 병원으로 옮기느라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복지부 산하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응급환자가 병원을 옮겼을 때 사망률은 7.4%로 그렇지 않은 응급환자의 1.7%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응급 외상환자들이 적절한 이송과 진료를 받았을 때 사망을 막을 수 있는 ‘예방가능환자사망률’은 지난해 32.6%였다. 100명 중 33명은 응급처치와 수술을 빨리 받았으면 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또 심·뇌혈관 응급질환자가 3시간 이내 병원에 도착하는 비율은 20.5%로 미국(35.0%) 일본(37.0%) 영국(40.0%)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인구 10만 명당 뇌중풍 질환 사망률도 국내는 83.8명으로 미국(39.9명) 일본(53.9명) 영국(63.3명)보다 높다.
▽응급시설·전문의 갖춰야=복지부는 올해 말 응급특성화센터를 설치한 뒤 순차적으로 늘리기로 하고 올해 7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응급특성화센터로 지정되면 의사 인건비, 시설 보조금 등의 운영비가 지원된다.
외상특성화센터는 20개 이상의 중환자실 병상과 1개 이상의 외상 전용 수술실,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와 자기공명영상(MRI)촬영 장치를 갖춰야 한다. 외과,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전문의를 항상 1명 이상 대기시켜야 한다.
응급뇌질환특성화센터도 비슷한 조건이다. 다만 수술실이 2개 이상 있어야 하고 뇌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신경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응급심장질환특성화센터는 심장질환자용 중환자실을 4개 이상 갖추고 심장내과 전문의가 대기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의 응급의료 환경이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1시간 이내 수술’이 가능해지면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고 서울의 대학병원에 환자가 쏠리는 현상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체계 확충을 위해 70억 원을 확보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 차원의 예산 확보와 별도로 기업체 대상의 기부금 모금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