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간부 10여명 조사… “인맥통한 전형적 로비”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25일 대한주택공사 간부 10여 명이 대형 토목설계업체에서 수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잡고 주공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 50분부터 2시간 30분 동안 경기 성남시 분당구 주공 본사의 택지설계단과 택지개발처, 도시기반처 등 3개 사무실에서 7상자 분량의 최근 3년간 공사발주 관련 서류와 컴퓨터 자료 등을 압수했다.
경찰은 “주공의 전 서울본부장 권모(61·구속) 씨가 2005년 5월 퇴직한 뒤 부회장으로 입사한 토목설계업체 S엔지니어링이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주공 고위급 간부 및 중간간부 10여 명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포착했다”며 “뇌물 액수는 현재까지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권 씨가 입사하기 전엔 주공에서 발주한 설계용역 수주 실적이 한두 건에 불과했던 S엔지니어링은 이후 17건, 250억 원대의 설계용역을 수주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에 앞서 경찰은 24일 주공 판교사업단 전문위원 김모(58·구속) 씨가 인사 청탁과 함께 건넨 3700만 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와 주공 직원들에게 향응을 제공(뇌물공여)한 혐의로 권 씨를 구속했다.
그동안 공기업 간부 1, 2명이 관련된 뇌물비리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10여 명의 간부가 무더기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기는 이례적이다. 주공 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한 것도 1962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경찰은 “업체에서는 퇴직한 실력 있는 임원을 영입하고 임원은 인맥과 돈을 동원해 공사를 수주하는 전형적인 로비 행태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S엔지니어링은 2005년 5월 주공에서 퇴직한 임원 권 씨를 고액의 연봉과 판공비, 부회장이라는 고위 직책을 주고 영입했다.
이후 권 씨는 자신의 친정인 주공을 상대로 설계용역 수주를 전담하면서 전방위 로비를 펼쳐 손쉽게 수백억 원 규모의 용역을 따낼 수 있었다.
또 권 씨는 입사 이후 주공 직원 8, 9명을 S엔지니어링에 스카우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역시 친정인 주공의 인맥을 관리하기 위해 향응과 접대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권 씨 집을 압수수색 해보니 100만 원씩 봉투에 든 현금 4000만 원이 발견됐다”며 “권 씨 혼자서만 주공 직원에 대한 접대용으로 7500만 원의 판공비 카드를 사용한 점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미 지난달 25일 구속한 건설브로커 나모(53) 씨가 고철철거업체의 부탁을 받고 주공 간부 7, 8명에게 2400만 원대의 골프 및 술 접대를 한 혐의를 확인했다. 이어 이달 19일 나 씨에게서 740만 원을 받은 주공 판교사업단 전문위원 김모(58) 씨를 구속했다.
김 씨가 권 씨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3700만 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한 뒤 권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S엔지니어링의 주공 로비도 포착했다.
경찰은 “권 씨는 퇴사 후에도 인사 청탁을 받을 정도로 주공 내에 확실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며 “S엔지니어링의 뇌물로비의 핵심 고리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압수수색한 용역발주 관련 서류와 컴퓨터 파일등에서 퇴직자 모임과 관련한 서류를 확보해 주공의 전관예우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경찰은 건설브로커 나 씨에게서 향응을 제공받은 주공 인천지사와 본사 구조설계팀, 오산세교지구 등의 간부들에 대해서도 여죄를 수사 중이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