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MBC에 이례적 주문
“재판장으로서 한마디 덧붙이겠다.”
31일 오후 3시경 서울남부지법 413호실 법정에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농림수산식품부가 MBC ‘PD수첩’을 상대로 낸 정정 및 반론보도 청구소송 선고공판이 진행 중이었다.
재판장인 김성곤 부장판사(민사합의15부)가 판결문을 내려놓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방청객을 응시했다.
“(PD수첩으로선) 일부 승소 판결이 난 셈이다. 언론사인 피고는 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비추어 이번 판결에 대해 비판하거나 평가할 수 있다.”
김 부장판사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피고가 정정 및 반론보도를 할 때 판결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이를테면 실질적으로 진 부분도 이겼다고 한다든지 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정정보도에 의한 피해자 권리구제 기능이 매우 약화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법정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방청객이 웅성거렸다.
김 부장판사는 동요 없이 “따라서 정정이나 반론보도를 할 경우 가급적 판결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말 것이며 전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다른 기회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 내용을 평가하지 말고 정정보도에 충실하라는 재판장의 주문은 이례적이었다. 이 같은 주문은 그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 등에서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결정이 날 때마다 반박보도로 일관해 온 PD수첩에 대한 엄중 경고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이날 “PD수첩은 일부 잘못된 광우병 보도 내용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7가지 쟁점 가운데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소로 보도한 부분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에 이른다는 내용을 정정보도하라고 주문했다. △5가지 특정위험물질(SRM) 수입을 허용한 것처럼 보도한 부분은 “시청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반론보도를 판시했다.
미국 여성인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은 “허위보도지만 충분한 정정보도가 이뤄졌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독자 대응 불가능 △라면 수프 등에 의해서도 감염 가능 △미국 도축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한 정부 등의 보도 내용은 사실보도가 아닌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며 각하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