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500억 슈퍼컴 가지고도 오보내는 이유

  • 입력 2008년 8월 3일 18시 59분


"슈퍼컴퓨터로 스타크래프트 게임 하는 거 아닙니까?"

최근 주말 날씨 예보가 줄줄이 빗나가면서 기상청에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수백억 원짜리 슈퍼컴퓨터가 있으면서도 왜 날씨를 못 맞추느냐는 것. 슈퍼컴퓨터로 온라인 게임하는 데 쓰느냐는 비아냥까지 있을 정도다.

기상청은 1997년부터 슈퍼컴퓨터를 예보에 이용하기 시작해 현재는 2005년 11월 500억 원을 주고 들여온 2호기를 사용하고 있다. 구입비 외에도 유지·보수비, 냉난방 및 장소임대료, 통신요금, 전기요금 등으로 매년 40~50억 원의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기상청은 내년 말에는 550억 원을 주고 3호기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요즘같은 상황이라면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클지 의문시된다.

●예보는 시간이 생명…복잡한 계산 제 시간에

가정용 PC가 워드프로세서 등 각종 프로그램을 실행하듯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수치예보모델'을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수치예보모델은 날씨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다.

188개국에서 동시 기상 관측을 실시한 자료를 모아 수치예보모델에 입력한 뒤 복잡한 계산을 거쳐 미래의 날씨 예측을 내놓는다.

이 때 입력하는 자료의 양은 신문으로 따지면 1억 4000만 면 정도. 이를 바탕으로 슈퍼컴퓨터가 복잡한 계산을 거쳐 그래픽 형태의 결과물 1만여 장을 만들어낸다.

입·출력되는 자료의 양이 많고 정해진 시간에 예보를 내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가 필수적이다.

기상청 이동일 수치모델운영팀장은 "현재 계산해야 하는 양은 이론적으로 가정용 PC 4만대를 동시에 돌려야 해결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자료를 잘게 쪼개는 것 등이 불가능해 슈퍼컴퓨터 없이는 수치예보모델을 운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컴퓨터의 속도가 빠르면 보다 정교한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결과를 빨리 내면 예보관들이 자료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호기의 이론 성능은 18.5Tflops(테라플롭스·1Tflops는 1초당 부동소수점 연산을 1조 회 할 수 있는 능력)로 2005년 11월 도입 당시에는 세계 슈퍼컴퓨터 중 16위였지만 현재는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슈퍼컴이 낸 예측도 100% 정확하지 않아 예보관이 최종 판단

슈퍼컴퓨터가 수치예보모델을 돌려 내놓은 결과는 날씨 예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가장 객관적인 자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치예보모델이 100%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전혜영 교수는 "수치예보모델은 자연의 현상을 모두 표현하는 게 아니라 아주 굵직한 과정만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어서 피할 수 없는 오차가 존재한다"면서 "100% 정확한 예보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경대 대기과학과 오재호 교수도 "모든 기상현상을 입력하는 게 불가능해 일부를 샘플링해서 자료로 쓴다"며 "때문에 초기에 없는 자료는 슈퍼컴퓨터를 돌린다고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예보관들은 수치예보모델의 결과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상황, 외국의 자료 등을 종합한 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종 판단을 내린다.

수치예보모델이 객관적 자료임에는 분명하지만 예보를 내는 데 있어서 그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기상청 정관영 예보상황4과장은 "모델의 결과는 예보관이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날씨를 예측한 뒤 참고하는 하나의 자료일 뿐"이라며 "예보관과 모델의 예측이 다를 경우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는 "모델과 다른 예보를 했다가 빗나갈 경우 예보관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모델의 결과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이 지난해 이화여대 국지재해기상예측기술센터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예보역량 요소별 중요도는 수치예보모델 성능이 40%, 관측역량이 32%, 예보관 역량이 28%를 차지했다. 결국 컴퓨터를 이용한 수치예보모델 만큼 사람의 역량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선진국과 기술격차 10년

각국의 지형, 기상 현상 등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예보 정확도가 세계적으로 몇 위에 해당하는지 순위를 매기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기술수준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수준은 선진국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세계적으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수치예보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13개국. 한국은 일본의 모델을 1991년 들여와 1997년부터 예보에 이용하고 있다.

13개국 중 11개국이 세계기상기구(WMO)에 모델의 정확도를 보고하는데 정확도면에서 일본은 3위지만 한국은 9위 수준이다.

이 차이에 대해 기상청 수치모델개발과 장동언 과장은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지속적인 개발을 해 더 이상 같은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델 개발 기술이나 관측 자료의 활용 측면에서 선진국과 지속적인 차이가 벌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세계 1위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와는 10년 정도의 기술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덕영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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