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문신. 교도소로부터의 탈출 경로와 이후의 모든 행동 계획을 문신에 새겼다. 감방 동료인 수크레는 온통 문신투성이인 스코필드의 등 뒤에서 손거울을 들고 있고 스코필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등 쪽에 새겨진 문신 일부분을 들여다본다.
수크레가 묻는다. “지금쯤이면 도면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스코필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도면을 다 암기하는 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암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얼마 후, 불의의 사고로 등에 화상을 입은 스코필드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문신이 지워졌음을 알고는 당황해하지만 지워진 내용을 끝내 기억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정신병동에 수감된 정신이상자 패토식이 놀라운 수준의 기억력을 발휘해 지워진 부분의 그림을 결국 완성해낸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화제작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에 나오는 몇 개의 장면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억력과 창의력에 대한 서양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창의적인 천재로 등장하는 스코필드의 기억력 수준은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반면에 정신병자로 설정된 패토식의 기억력은 가히 천재의 수준이다.
과거를 뒤돌아보는 능력이 기억력이라면 현실에 기초하여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창의력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사물 혹은 사건에 접해 본질을 꿰뚫어 보고 머릿속에서 청사진을 그려내는 능력이다. 바로 그 점이 스코필드가 갖춘 창의력이며 시청자가 열광하는 이유다.
전화번호가 필요하면 전화번호부를 들춰보면 되지 전화번호부를 다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것이 천재로 불리는 스코필드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자문을 달달 외우는 신동(神童)을 칭송하는 우리의 전통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토록 중요하다는 인간의 창의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필자는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창의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대뇌에는 창의력을 담당하는 부분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다르게 분포돼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타고난 창의적인 언어능력(language faculty)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대뇌에서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사실이 그런 추측의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력 부분을 과도하게 훈련시켜서는 안 되고 타고난 창의력 부분을 적절히 자극하여 꽃피우게 하는 교육방식이야말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우리 청소년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창의력의 발달 수준과 기억력의 발달 수준이 스코필드와 패토식처럼 서로 반비례 관계라는 사실이 자연의 섭리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세창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