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뿌리찾기’ 정통성 논란

  • 입력 2008년 8월 7일 03시 00분


19세기 광혜원-법관양성소가 개교 시점?

찬 “의대 - 법대의 모태 된 국립기관”

반 “광복후 새출발… 일제 포함말라”

개교 62주년인가, 개교 123주년인가.

서울대가 고종이 세운 근대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1895년)나 ‘광혜원’(1885년)을 서울대의 효시로 정해 개교 시점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현재 서울대 개교 시점인 1946년 미 군정의 국립종합대학안(국대안) 발표보다 5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법관양성소를 효시로 정하면 서울대 역사는 올해 개교 62주년에서 113주년으로 바뀌게 된다. 광혜원으로 정하면 올해 123주년.

하지만 일부 교수가 친일 잔재 청산을 이유로 이에 반대하고 있어 개교 시점 변경을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대 총동창회 허선 사무총장은 “최근 이장무 총장의 요청에 따라 이태진 인문대학장, 김기석(교육학) 교수와 함께 교사(校史) 개정을 위한 자료수집에 들어갔다”고 5일 밝혔다.

허 사무총장은 “이 총장이 ‘서울대가 같은 국립기관인 구한말 교육기관을 효시로 해 교사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며 “학내 여론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대학본부에서 직접 추진하기보다 동문회가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 학장도 “조만간 교사 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며 이미 의대와 법대 등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장은 고종이 설치한 법관양성소나 첫 서양식 의료기관인 광혜원을 서울대의 효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관양성소는 경성법학전문학교의 전신(前身)으로 국대안에 따라 일제가 만든 경성제국대 법학과와 통합돼 서울대 법대가 됐다. 서울대 법대는 법관양성소를 자신들의 뿌리로 보고 1995년 ‘근대 법학교육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인 바 있다.

광혜원 역시 첫 국립 의료기관이라는 점에서 서울대 의대가 지난해 3월 ‘광혜원 122주년, 대한의원(일제가 광혜원 등 대한제국 말 의료기관을 묶어 1907년에 설치) 100주년’ 행사를 자체적으로 치렀다.

하지만 당시 일부 진보계열 교수가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는 이유로 기념행사를 반대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울대 역사에 일제강점기까지 포함하는 것은 광복 이후 자주 독립 대학으로 새롭게 출발한 서울대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학장은 “구한말 조선왕조를 허수아비로 폄훼하는 일부 학자의 논리는 문제가 있다”면서도 “차근차근 관련 자료를 축적해 반대하는 분들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 교사 개정작업이 연세대와 불협화음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대가 효시로 고려하는 광혜원은 연세대에 흡수된 세브란스병원의 모체이기도 하기 때문. 이에 대해 이 학장은 “어느 한쪽의 효시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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