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에는 행사의 시간·장소를 선택할 자유가 포함된다. 주최 측에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와 장소를 선호하지만 주최 측의 절대적 결정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집회의 자유는 중요한 다른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경우에는 법익에 양보해야 한다.
시간 선택에 있어서도 집회장소 인근의 상인이나 운전자의 이해와 민감하게 충돌할 수 있는데 특히 퇴근길 러시아워 시간대의 주요 도로 집회는 교통소통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여기서 집회 참여자와 비참여자의 권리·이익 사이에는 적절한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비참여자의 권리와 조정해야
우리 법은 야간에는 원칙적으로 옥외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한다. 밤에는 질서 유지가 어렵고, 낮보다 자극에 민감하고 흥분하기 쉽다는 점을 금지 논거로 든다. 그러나 낮과 밤의 차이 하나로 사람 행동의 허용과 금지가 판가름 나는 점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집회를 주간에만 할 수 있다면 직장인은 원천적으로 참가가 어려워 자유의 본질적 침해가 아닌가 하는 시비가 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상당수의 일반인은 야간집회가 왜 금지돼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비현실적인 법 규정은 탈법의 빌미를 준다. 이익 조정의 저울질 없이 야간집회의 원칙적 금지만을 고집하는 규정은 문제가 있다.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한 경우’에는 야간 집회를 허용하는 현행법을 융통성 있게 잘 운용해야 한다.
도로에서도 집회의 자유와 도로를 통행하려는 사람의 이동 자유가 크게 부딪친다. 시위에 적절한 장소를 발견하기 어려운 여건하에서 시위대는 이미 차도 사용에 익숙하다. 교통량이 많은 주요 도로일수록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게 마련이라는 점도 차도를 선호하게 한다.
한편으로 대규모 집회·시위는 성격상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기 쉽기 때문에 시위를 하면서 교통소통을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법 규정을 들어 주요 도로에 대해 항상 전면적으로 집회·시위를 못하게 하는 방침도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고 종로와 같은 주요 도로의 8차로 전체를 8시간이나 막고 시위를 한다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도로에서의 조화점은 시위와 관계없는 사람이 자신의 영업권, 행동자유권의 방해를 어느 정도 참아야 하는지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주요 도로일수록 차도 전체나 장시간의 점거는 그로 말미암아 불편을 겪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 비용을 그만큼 더 많이 빼앗게 된다. 따라서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에 있어서는 반드시 일부 차도를 통한 교통소통의 보장과 폴리스라인의 유지라는 조건을 준수케 해야 한다. 교통소통 방해의 심각성에 비례해 행사 기간도 그만큼 짧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법이 정당하냐 아니냐에 대하여는 견해가 나누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법을 만들기 위해 뽑아 놓은 국회의원이 제정한 법률이 다소 문제가 있어도, 도저히 정의롭지 못해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법으로서 존중해야 한다. 법률의 무효 선언은 오로지 헌법재판소만이 할 수 있다.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는 의당 지켜야 하며, 그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승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법률 무효선언은 오직 憲裁만
국가가 탄생한 것은 끝없이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만인 사이의 투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국가가 없으면 자유도 없음은 역사가 잘 가르쳐 준다. 시위 현장에서의 폭력과 진압의 악순환은 자유민주사회의 고귀한 시위문화의 성숙을 어렵게 한다. 자신이 누려야 할 자유의 외곽에 쳐져 있는 울타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자유의 정신 못지않게 중요하다. 울타리, 즉 법치는 우리가 마셔야 할 깨끗한 물이고 숨 쉬어야 할 맑은 공기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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