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대한민국, 자랑스러운 나라다

  • 입력 2008년 8월 11일 03시 00분


우리의 최고 길일인 광복절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축제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찬란한 문명, 환희의 시대’를 주제로 내건 베이징 올림픽의 하늘 찌를 듯한 기세와 100일이 넘도록 가련하게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시위에 가려 우리는 역사도 모르고 꿈도 없는 지리멸렬한 삶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나라의 60번째 생일을 앞두고도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은 올해 새로 출범한 정부에 실망이 크기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이 실망스럽다고 역사에도 등을 돌리고 민주적 선거의 원칙과 결과까지 지울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삶의 터전이고 조상만대 후손만대의 나라이지 대통령이나 그 밖의 몇몇 떠오르는 사람의 전유물도 책임만도 아니다.

전 세계의 역사 발전 추세로 볼 때 우리는 실망스러운 일도 많지만 감사할 일도 많은 국민이다. 국권을 상실한 지 38년 만에 다시 세계가 인정하는 독립국가가 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와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그날의 감격과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기운이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며 전 세계를 진동시킨 기세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저조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통일지향 역사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 눈으로만 보고 정통성마저 부정하고자 했던 친북성향의 전교조식 역사교육의 누적된 효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국 60돌 신명나지 않는 이유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크게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에 비판적인 사람 가운데는 친북성향과 상관없는 구세대 민족주의 계열 학자도 없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 건국은 임시정부 수립 때 이미 이뤄졌다는 주장을 편다. 또 건국 60주년을 강조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하고 광복절의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시도라고 반발하며 심지어는 친일파 후손들의 음모라는 억지까지 쓰는 이른바 대학교수까지 있다. 하긴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치하자는 어느 국회의원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 오해와 우려를 강화시킨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해 또는 곡해이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기리자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열의 공로 없이 어떻게 우리가 독립국가로 다시 설 수 있었으며 해방 없이 대한민국의 수립이 가능한 일이었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광복의 의미는 사실 ‘해방’이라는 소극적 개념보다도 ‘자주독립’이라는 적극적 개념을 더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1919년에 이미 나라가 건국됐다면 우리는 왜 독립운동을 하며 피를 흘리고 창씨개명까지 당하는 굴욕을 견뎌야 했던 것인가. 심정적으로만 말한다면 우리는 나라를 잃은 적이 없으며 건국은 단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건국 6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까 하는 논의에서 우리는 이제 좀 더 솔직하고 명료하게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광복의 기쁨은 미소(美蘇)에 의한 남북한 분할점령과 신탁통치안 발표로 찬물을 맞았다. 민족 전체가 반대해 일어났지만 소련공산당의 지시를 받던 좌익은 곧 찬탁으로 돌아섰고 남북한 인구 비례에 따른 선거로 한반도에 단일정부를 수립하게 하자는 유엔 결의는 미국과 본격적 냉전에 돌입한 소련의 반대로 무산됐다. 선거는 부득이 남한에서밖에 치를 수가 없었다.

과거에 감사하며 미래 설계해야

1948년을 건국일로 경축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남한에서만이라도 우선 그 당시 최악으로 치닫던 스탈린 독재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미군정(美軍政)도 종식시키며 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해 훗날 통일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그 공적을 기리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산화되더라도 통일이 됐어야 했다고 아직도 믿는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수립은 최대의 불행이었고 이승만과 미국은 영원한 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폭력과 부패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역사나 국가는 없다. 법치의 강화를 통해 그것들이 판칠 수 있는 여지를 줄여나가며 안보와 치안의 불안, 빈곤, 질병, 무지 등 그 밖의 적을 퇴치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그 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루어 왔다. 우리의 과제는 더 어려운 시대를 산 선열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빛나는 역사의 장을 열어가는 일일 것이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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