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손기은/취업 때문에 ‘5학년’이 되는 현실

  • 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성적우수 장학금을 단골로 받는 후배는 B+학점을 받고 수심 가득한 얼굴로 교수를 찾아갔다. 나는 후배가 A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를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완전무결한 학점에 B+라는 흠집(?)이 생기면 취업에 불리할 수 있겠다는 짐작에서였다.

그러나 후배는 교수에게 F학점을 달라고 부탁했다. 필수 전공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서 졸업을 미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후배는 교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취업을 위해 졸업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후배의 평점은 4.0이 넘는다. 140학점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데도 156학점을 이수하고도 억지로 졸업을 미룬다. 후배는 취업을 위해 한 달 만에 한자자격증을 따고 또 한 달 만에 컴퓨터 능력 마스터 자격을 얻었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후배에게 충고를 했다. “졸업자인지 졸업예정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자격이나 자격증이 아니라 노력이고 실력이다”라고 했다.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선택을 되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헤어지기 전 후배는 “선배도 졸업반이 되면 제 심정을 이해할 거예요”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한 학기가 지나고 나도 졸업예정자 신분이 됐다. 취업을 위해 중요한 점은 실력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난 학기와 달리 주위 사람의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99명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격증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졸업예정자 신분도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후배처럼 9차 학기를 다니기로 했다. 계절학기를 들으면 9차 학기를 수강하지 않아도 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점 등록을 해서 졸업예정자 신분을 유지하기로 했다. 후배처럼 컴퓨터 능력 마스터 자격을 얻기 위해 이미 절반의 자격증도 땄다. 땡볕 아래 한자 속성 완성이라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후배에게 했던 말을 한 학기 만에 완전히 뒤집은 것은 물론 후배가 거쳤던 과정을 똑같이 따라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절친한 교수는 “학점 자격증 토익을 일컫는 신조어 스펙이란 말은 원래 공산품이나 일용품의 제품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스펙을 갖춰 품질 좋은 상품이 될 게 아니라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이 돼야 한다”라며 학생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학생들은 취업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도 눈앞의 취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도 다양한 생각과 활동을 하며 젊음을 만끽하고 싶지만, 취업난 앞에서 사치로 여겨지는 게 슬픈 현실이다.

손기은 중앙대 경영학부 4학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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