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해도 임금 보전’ 관행에 제동

  • 입력 2008년 8월 20일 02시 59분


정부, 무노동 무임금 위반 기업 실태조사 착수

급여 명세서엔 ‘0원’… 뒤로는 두둑한 격려금

李노동 “파업 부추길 소지”… 악순환 끊기로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인 뒤 파업 기간에 받지 못한 임금을 나중에 ‘보상금’ 형태로 받아온 관행에 제동이 걸린다.

정부가 노사 쟁의 타결 이후 정규 임금이 아니라 ‘위로금’이나 ‘격려금’ 등으로 사실상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에 대해 실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최근 본보 기자를 만나 “기업들이 노조와의 관계를 고려해 격려금이나 보상금 등의 형태로 사실상 파업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보전해주고 있다”며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장관은 “기업이 파업 노동자에게 사후 보상금을 주는 것은 파업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편법) 임금 지급 실태를 철저하게 조사해 외부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파업 후 기업이) 위로금으로 보상해주는 종전의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원칙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임금·단체협상과 관련해 12일 회원사에 보낸 ‘2008년 임단협 체결 방안 권고문’을 통해 “노조가 파업하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고 불법 파업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라”라고 권고했다.

▽뒤로 주는 ‘임금’=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는 2006년 6월 26일부터 31일 동안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공장이 멈췄다. 매출 손실만 1조3000여억 원.

당시 사측은 파업이 끝난 뒤 파업기간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품질 및 생산성 향상 격려금으로 100만 원, 목표달성 격려금이라는 명목으로 100만 원 등 노조원 1인당 200만 원 이상을 지급했다. 노조는 파업을 하고도 두둑한 임금 보따리를 챙긴 것이다.

금호타이어 노조도 지난달 8∼11일 전면 파업을 했다. 금호타이어는 하루 손실이 50여억 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노동자는 지난달 2∼7일의 부분 파업까지 합쳐 모두 7일간 일을 하지 않고도 월급(통상임금)의 50%에 해당하는 ‘파업수당’을 받아냈다.

노동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는 115건. 노동부의 A지방청 관계자는 “지난해 노사분규가 끝난 뒤 보상금 형태로 파업급여를 지급한 사례가 많았다”며 “통상적으로 단체협약에서 ‘사측은 1인당 얼마씩의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킨다”고 말했다.

사측의 입장에서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깼다는 것이 대외적으로 부담스럽게 작용하기 때문에 급여명세서에는 ‘0원’으로 나가고 타결 위로금 등으로 보전한다는 것.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는 “보상금 형태의 임금 보전은 오히려 파업을 유도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불합리한 노사 관행은 외국인투자가에게 국내 기업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여당, 편법임금지급 처벌 추진=노동조합 및 노동조합관계조정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무노동 무임금’을 이유로 파업을 할 수 없다. 파업을 강행하면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해서는 ‘파업 기간에 대해 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만 명시할 뿐 임금을 줬다고 해서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인 안홍준 의원은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깨고 파업 노동자에게 보상금이나 격려금 등을 지급한 기업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파업이 일어나면 결국 사측이 양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노사 자율에 맡겨서는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에 노동계는 ‘보상금’이 현실적으로 노사 협상의 한 방법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노총 이민우 정책실장은 “보상금을 쟁의 협상 타결에 대한 ‘정치적 성과물’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사측으로서는 생산성 등의 문제가 있어서 경영상의 방법으로 지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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