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을 가기로 했지만, 병원 입구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빈소 앞까지 왔지만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의 동료들이 “들어가서 인사라도 하라”고 권유했지만, 고(故) 박상옥 소방장의 부인 김신옥 씨는 빈소 입구에 선 채 “그때 생각이 나서…”라며 손으로 눈물을 훔치기만 했다.
2001년 3월 화재 진압 중 6명의 소방관이 숨진 ‘서울 홍제동 화재 참사’의 유가족 4명이 21일 저녁 서울 은평구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소방관 3명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못했기 때문일까.
유가족 중 고 김철홍 소방장의 형 김재홍 씨, 고 장석찬 소방교의 부인 천순자 씨만 빈소에 들어가 헌화했을 뿐 김신옥 씨와 고 박동규 소방위의 부인 이나영 씨는 입구에서 발길을 떼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김재홍 씨는 조문록에 “119 Hero(영웅),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홍제동 순직소방관 유족회”라고 적은 뒤 빈소로 들어갔다.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홍제동 사고 유족입니다.”
상주들의 손을 꼭 붙잡은 김 씨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김 씨는 “사고당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족들끼리 연락을 해 빈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2001년 홍제동 화재 때 숨진 소방관들은 물론 이번에 숨진 소방관들과 함께 근무했던 이성촌 소방교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는 유가족들이 안타까운 심정에 빈소를 찾았지만 당시의 아픈 상처가 다시 떠오를까 봐 차마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소방관의 근무 형편은 예전과 변한 게 없는 것 같다”며 “과거에도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 이번에 또 변을 당해서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빈소에는 숨진 소방관들을 추모하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본인보다 타인들을 항상 먼저 생각하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한 시민이 조문록에 남긴 글처럼, 소방관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1000여 명의 시민이 이날 빈소를 찾았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공동대표 등 정치인들도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어린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조위금만 건네고 간 시민 등 많은 사람이 빈소를 찾았다”며 “심지어 전화를 걸어 ‘직접 빈소를 방문할 수 없어 부의금이라도 보낼 테니 소방방재청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는 시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소방관 목숨 앗아간 대형 조명
설치 규정 없어 사고위험 상존 ▼
■ 감식 결과 드러난 문제
감식반은 열에 취약한 천장 구조가 대형 조명 설치에 따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하면서 소방관들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2006년 1월 대전에서도 나이트클럽의 조명이 갑자기 무대로 추락해 손님 2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육중한 무게의 조명으로 인한 사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본보 취재 결과 조명 설치에 관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물 허가를 담당하고 있는 국토해양부는 “철골 구조물의 경우 구조기술사가 설계도면을 보고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며 “조명과 같이 구조물에 매달리는 전기시설물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국토부 건축기획과 관계자는 “건축물 바닥은 ‘도서관의 경우 적재하중 기준이 높아야 한다’는 식의 기준이 있지만 천장 구조물은 없다”며 “조명 설치, 조명 하중 등은 소방방재청에서 관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방방재청 안전과 관계자는 “소방방재청에서는 건축 소재의 내연성, 소화 설비 등 시설물 소방 기준에 대해서만 볼 뿐 조명과 같은 비구조 요소는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국건축기술사회 관계자는 “조명을 설치할 때 지탱하는 구조물이 조명의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비슷한 위험에 노출된 건물이 곳곳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