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차례 강연… 軍장병 체제선전 노출
명함 건넨 장교 e메일 해킹 가능성도
합수부 “간첩 사건은 장기간 내사 불가피” 해명
■ ‘지각 검거’ 문제없나
위장 탈북 간첩 원정화 씨는 수사기관의 은밀한 내사가 진행되는 동안 군 장병들에게 50차례 이상 안보강연을 실시하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기무사령부에 따르면 원 씨는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일선 군부대에서 안보강연을 하면서 ‘아리랑 축전’과 ‘조선의 노래’ 등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영상물 CD를 상영했다. 또 ‘북핵은 체제 보장용’ ‘6·25전쟁은 미국 일본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북한의 주장을 선전하기도 했다.
북한의 간첩이 국가안보의 주축인 군 장병들을 상대로 공공연하게 정신교육을 한 셈.
당시 기무사는 원 씨로부터 문제의 CD를 회수하고 경고했지만 원 씨는 군 당국을 속이고 같은 내용의 CD를 상영하거나 북한 찬양 발언을 하다 지난해 5월 안보강사에서 제외됐다.
원 씨가 강사로 선정된 데 대해 기무사는 북한에서 남한의 경찰지구대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 분주소에 근무해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 감안됐다고 설명했다.
안보강사는 통상 일선 부대가 요청해 오면 기무사가 자체 탈북자 자료와 경찰 및 국가정보원의 관련 자료를 검토해 적임자를 선발한다는 것.
원 씨는 기무사와 경찰이 2005년 5월 내사에 착수한 이후 7개월여간 안보강사로 활동했고, 그 결과 일선 군 장병들은 북한의 체제 선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원 씨가 군 장교 명함 100여 장을 중국에 있는 북한 보위부 지부에 전달한 뒤 일부 장교의 e메일이 해킹을 당했다는 의혹도 충격이다. 만일 사실로 드러난다면 장교들의 신변 보안이 너무 허술하다는 점이 확인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 기무사 국정원이 2005년 5월 내사에 착수한 뒤 3년여가 지나서야 원 씨를 검거하고 나선 점에 대해서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기무사가 지난해 3월 원 씨가 중국 주재 북한영사관에서 북한 찬양 CD를 가져왔다는 결정적 정황을 확보한 뒤에도 원 씨가 계속 안보강사로 활동하는 한편 군 장교들과 교제하며 군 기밀을 캐고 다녀 수사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3년 반 동안 내사를 하고 왜 지금 발표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간첩 사건 수사의 특성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간첩 사건은 5년 넘게 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 사건을 공개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세였으나 지난해 말부터 원 씨가 세 차례나 일본을 드나드는 등 일본으로 거점을 옮길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달 15일 중국에서 막 귀국한 원 씨를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합동수사본부는 당초 28일 이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일부 신문에서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유예하는 것) 약속을 파기하고 27일 이를 보도하는 바람에 서둘러 이날 오후 3시로 발표를 앞당겼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