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입국한 아들내외 연락 끊겨 쓸쓸한 장례식
27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서울장례식장에는 유족 없는 장례식이 치러졌다.
고인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 살다 아들 부부와 함께 조국으로 건너와 지난해 7월 운명한 한재준(77) 씨. 한 씨를 간병했던 동료 중국동포 김모 씨가 상주를, 다른 중국동포 100여 명이 유족을 대신했다.
중국동포들은 “자기를 버린 아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다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지만 영정 속 한 씨의 얼굴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장례식장으로 옮겨오기 전 1년 2개월 동안 영안실 냉동고에 갇혀 지내야 했던 한 씨는 이제야 편히 눈을 감는 듯했다.
한 씨도 2002년 아들 부부와 조국 땅을 밟았을 땐 ‘코리안 드림’에 부풀어 있었다. 철강공장에 취직한 아들은 다달이 두둑한 월급을 챙겨 왔고, 식당에 나가는 며느리도 심심치 않게 풍성한 밥상을 차렸다.
그러나 3년 뒤 한 씨가 뇌중풍에 걸리면서 아들 내외의 태도가 달라졌다. 변변한 간병인 없이 한 씨를 집에 방치하더니 급기야 아버지를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에 입원시킨 것. 아들은 “오갈 데 없는 노인이니 잘 보살펴 달라”는 말만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아들이 원망스럽지 않으냐”는 주변의 걱정에 한 씨는 “밉긴 왜 미워. 다시 돌아올 텐데…”라며 오매불망 아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지난해 7월, 1년 5개월의 투병 끝에 한 씨는 결국 눈을 감았다.
죽음이 비극의 끝은 아니었다. 유가족 없이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중국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 씨는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됐다. 한 씨를 돌보던 외국인노동자의집(노동자의집)은 아들 부부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
주한 중국대사관 측은 사망 1년이 지났지만 중국에 공고를 내고 유족을 찾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장례 위임은 불가하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노동자의집은 중국대사관에 “시신 처리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시신이 든 관을 대사관 앞으로 가져가겠다”는 서신을 보내고서야 장례 권한을 얻을 수 있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