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도주우려 없다” 영장기각

  • 입력 2008년 9월 1일 02시 59분


사기혐의 前판사, 구속영장 청구되자 한달간 잠적

검찰 “구인명령 3차례 어겼는데 너무 관대”

법원 “피의자 출석 기다린 것… 잠적 몰랐다”

수도권 지원장 지내고 1990년 변호사 개업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연락을 끊고 한 달여 잠적했다가 뒤늦게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판사 출신 변호사에 대해 법원이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법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수도권의 모 지원장을 지낸 이모(66)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지난달 28일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이 변호사의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으며,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22일 이 변호사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조은석)는 이 변호사가 “고위층 인사에게 부탁해 세금을 줄여주겠다”며 국세청으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부과 받은 개인 사업자에게서 5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변호사는 다른 의뢰인에게서 소송비용 명목으로 2억여 원을 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법원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피의자를 법정까지 강제로 구인할 수 있는 1주일 기한의 구인장을 발부한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첫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됐던 지난달 24일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검찰과 연락을 끊고 추가로 날짜가 잡힌 영장실질심사에도 모두 나오지 않다가 4번째 구인장의 기한이 끝난 28일 자진 출석했다.

그 사이 검찰은 법원에서 이 변호사의 휴대전화 등 통신조회 영장을 발부받아 이 변호사의 위치 추적을 하면서 검거에 나섰다.

그러나 법원은 한 달여 만에 나타난 이 변호사에 대해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의 구인명령을 3차례 무시한 피의자가 도주 우려가 없다면 어떤 피의자가 도주 우려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법원이 구인장을 4차례 발부한 전례가 있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피의자 신분상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적다”면서 “검찰이 구인장을 번번이 반환하면서 ‘영장 집행 불가’라고만 의견을 적어냈고, 구체적으로 사유를 밝히지 않아 잠적 상태라는 소명이 부족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가 출석한 상황에서 심문한 뒤 결정하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으로, 구인장을 4번 내준 것을 전관예우라고 지적한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면서 “최근 비슷한 이유로 다른 피의자에게 3번까지 구인장을 발부해 준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변호사의 영장이 기각된 다음 날인 29일 곧바로 이 변호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 변호사는 수도권의 한 지원장을 마지막으로 199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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