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군주론’

‘군주론’을 저술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 사상가이자 역사가이다. 그는 기만적이며 잔인한 통치술(권모술수론)의 창시자이자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도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방법을 마다 하지않는 ‘마키아벨리즘’, 냉혹한 군주의 옹호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냉혹한 군주’를 무덤 속으로 사라진 역사적 유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냉혹한 군주’는 때로는 현대의 정치 지도자로, 때로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시대에 따라 얼굴을 바꾸어가며 거듭나고 있다. 아마 마키아벨리도 이 ‘냉혹한 군주’가 500여 년을 지나 이처럼 다양한 인물로 환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군주’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생각의 시작

【 "군주는 여우의 교활한 지혜와 사자의 힘을 겸비해야 한다. 지배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의무는 국가의 권력과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를 포함한 냉혹한 현실주의 정치 기술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때때로 기만과 무자비한 무력을 활용할 줄 아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지배자이다. 하지만 전통적 도덕론자들은 군주는 항상 전통적 도덕률을 따르는 선군(善君) 또는 성군(聖君)이어야 한다며 그의 주장에 크게 반발한다.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적 독재정치를 경험한 한국 정치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부도덕하고 권력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지배자로 규정된다. 과거 ‘냉혹한 군주’가 민주주의 시대에 ‘인권을 유린한 잔인한 독재자’로 등치되는 것이다.

○ 뒤집어 보자

군주의 권모술수는 역사적 경험에서 선택된 정치적 행위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군주의 기만과 무자비한 무력의 활용은 ‘단지 부도덕한 인간의 행위’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역사적 경험 위에서 이탈리아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치적 안정과 국가적 통일을 위해 선택된 합리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와는 다르므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행해져야 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고집하는 군주는 자신의 국가를 유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약화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선하게만 행동하려는 사람은 전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패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의 권력을 보존코자 하는 군주는 비록 선하지 않은 방법이라 할지라도 필요하다면 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

악덕으로만 여겨져 온 군주의 행위(권모술수)가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정치적 행위로부터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이데올로기를 벗겨 버렸다는 점에서 탁월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군주’에 대해 우리는 불편한 마음과 섬뜩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냉혹한 군주’야말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냉혹한 군주’가 지닌 본성과 행위는 우리 자신과 매우 흡사하다. 성공과 출세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도덕적 가치를 쉽게 내다 버리고, 베풀기에 인색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잔인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군주’는 우리의 이기적 본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적 성찰을 자극하는 자화상과 같다.

이철광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