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백성기 총장- 한예종 황지우 총장 대담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4분


포스텍 백성기 총장(왼쪽)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 4일 포스텍 총장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두 총장은 “과학과 예술을 융합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좁은 생각을 털어내고 미래를 열어젖힐 큰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 기자
포스텍 백성기 총장(왼쪽)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 4일 포스텍 총장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두 총장은 “과학과 예술을 융합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좁은 생각을 털어내고 미래를 열어젖힐 큰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 기자
황지우 총장 “지금 내 저항대상은 인재육성 막는 좁은생각”

백성기 총장 “교육, 평준화에 묻히지않게 위기의식 가져야”

한국 유수의 이공계, 예술계 대학인 포스텍(포항공대)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큰 인재 육성’을 위해 손을 잡았다.

두 대학은 4일 경북 포항시 포스텍에서 교류 협정을 맺은 데 이어 이번 주부터 ‘교류 강좌’를 시작한다.

포스텍은 한예종에 ‘과학의 산책’을, 한예종은 포스텍에 ‘예술의 산책’을 개설한 것이다. 이 강좌에는 두 대학의 교수 28명이 9일부터 매주 강의한다.

한예종의 포스텍 강좌 내용은 △영화와 연출 △한국의 TV 드라마 △조각, 애니메이션 △무대미술, 오페라 등이고 포스텍의 한예종 강좌 내용은 △현대 과학기술의 방향 △인지와 정보처리 △생명공학과 인류의 생활 △디스플레이 기술 등이다. 강좌가 개설되자 두 대학 각각 500여 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본보는 이날 포스텍 백성기(59) 총장, 한예종 황지우(55) 총장과 포스텍 총장실에서 ‘큰 인재 육성을 위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불꽃’을 주제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두 총장은 “과학과 예술은 결코 이질적 분야가 아니다. 창조적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두 분야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절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력을 인정받는 공학 박사 출신과 한 시대를 풍미한 저항시인 출신으로 얼핏 보기엔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총장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큰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특히 “한국 사회에는 특별한 인재를 적극 육성하는 데 편견을 보이는 분위기가 있다”며 “한국의 미래를 열어 갈 큰 인재가 큰 틀에서 성장하도록 우리 사회가 박수를 보내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학과 예술은 매우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백 총장=뛰어난 과학기술자들의 공통점은 예술적 감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전형적인 인물이다. 옛날에는 과학과 예술이 한뿌리였는데 현대에 들어 분화됐다. 어느 한쪽만 알면 불완전하지 않겠는가. ‘완전한 인간’을 위해서 동일했던 뿌리를 찾아야 한다.

▽황 총장=과학기술과 문화예술에서 ‘최고’를 지향할 때는 분명히 통한다. 세계적인 과학기술이나 문화예술이 태어나려면 고도의 창의력이 필요한데 창의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은 다르지 않다. 개인으로 보면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조화롭게 작동할 때 기존을 뛰어넘는 창의성이 나올 수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백 총장은 지난해 이맘때 황 총장이 포스텍에서 ‘과학과 예술의 창의성’에 대해 특강한 것을 우연히 듣고 무릎을 쳤다. 과학기술 연구자들에게 필수적인 창조적 열정이 예술적 감수성에 그대로 들어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 총장은 9일 오후 1시 포스텍에서 ‘명작 읽기’를 주제로 첫 번째 강의를 한다.

―황 총장은 1980년대부터 ‘저항시인’으로 유명했는데….

▽황 총장=지금은 저항의 대상이 바뀌었다. 반독재 민주화투쟁은 시대에 맞지 않다. 나는 10년 전부터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이라는 두 날개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예술 영재를 키우는 대학의 총장을 2년 정도 해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각 분야의 영재교육에 민주주의나 다수결, 평등 같은 잣대를 적용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이래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 큰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그릇은 큰 생각을 하는 사회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나의 저항 대상은 인재 육성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좁은 생각이다.

▽백 총장=과학이든 예술이든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소수다. 그들을 어떻게 빨리 찾아내서 맞춤형 인재교육을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열심히 잘하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엇을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교육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고들 하지만 정말 부족한 것은 인재를 위한 수월성(秀越性) 교육이다. 인재교육이 평준화 이념에 묻히지 않도록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위기의 실체가 무엇이라고 보나.

▽황 총장=한국이 중국과 일본 인도 같은 대국 사이에서 협공을 받고 있는 샌드위치 처지라는 진단에 공감한다. 문화예술의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예술적 콘텐츠’로 한국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와 동떨어진 예술은 바람직하지 않다.

▽백 총장=세계 일류 대학들은 결코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는다. 성큼성큼 뛰어가지 않으면 우리의 목표는 자꾸 멀어진다. 어떻게 절실한 위기의식을 갖지 않겠는가. 과학기술자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나 자연을 관찰하는 방식이 남달라야 한다. 이번 실험이 한예종보다는 포스텍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두 총장은 이번 교류가 한국의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씨앗이 될 것이라며 가슴이 뛴다고 했다. 이들은 “학생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서로에게 부족한 게 있다는 증거”라며 “이질적으로 여겨진 두 분야가 섞여 통이 큰 인재를 만드는 데 틀림없이 기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백성기 총장

△경기 수원 출생 △경기고,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공학박사 △1986년 포스텍 개교와 함께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부임 △현재 미국 세라믹학회 석학회원 △2007년 9월 포스텍 총장

○ 황지우(본명 황재우) 총장

△전남 해남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미학과 졸업. 서강대 철학과 석사 △1997년 한예종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부임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조직위 총감독 △2006년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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