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긋기… 깍두기 공책… 넉달 연습하면 어느새 달필
“아들아, 도대체 이게 무슨 글씨니?”
김모(41·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주부는 글씨를 잘못 쓰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때문에 걱정이다. 자기가 쓴 노트필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예삿일. 중요한 전화 메모를 괴발개발 아무렇게나 써 놓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서술형 시험 문제에서 받침 ‘ㅁ’을 ‘ㅇ’처럼 써 놓아 오답처리 됐을 때는 학교 교사에게 전화를 해 사정하기도 했다.
최근 학생과 학부모를 중심으로 ‘바른 글씨 쓰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클릭 한번으로 다음 수업시간에 준비해야 할 준비물과 과제가 출력되어 나오는 온라인 알림장, 학습자료로 학교에서 나눠주는 주요과목 요점정리 등 학생이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쓰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악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악필은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수행평가나 대입 논술시험에서 악필은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다. 대입 논술시험 답안을 채점했던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말도 있듯 비슷한 수준의 논술문을 써낸 경우 아무래도 악필보단 반듯하고 깔끔한 글씨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악필은 평생 간다”는 말은 거짓이다. 노력만 하면 중년이 되어서도 악필은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글씨를 교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늘어난다.
악필을 달필로 바꾸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 ‘글씨쓰기 놀이’로 자신감까지 쑥쑥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글씨, 삐뚤빼뚤하거나 크기가 들쑥날쑥한 글씨 등 ‘잘못 쓴 글씨’는 자녀의 집중력,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한번 잘못 쓰기 시작한 글씨는 교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어렸을 때 빨리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취학 전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라면 ‘선긋기’ 연습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자음과 모음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크게 써보는 것. 특히 ‘ㅂ’ ‘ㄹ’ ‘ㅋ’ 등 획이 많은 자음은 선과 선이 정확히 맞닿도록 하고, 필순 적어주어 글자모양은 물론 쓰는 방법까지 정확히 익히도록 해야 한다.
공책은 칸으로 되어있는 일명 ‘깍두기공책’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틀을 이용해 글자의 크기를 일률적으로 맞추고 가지런히 배열하는 연습을 한다. 처음엔 가로 세로 2cm 정도 크기의 깍두기공책으로 시작하고, 점차 칸의 크기를 줄여 작은 글씨도 쓸 수 있도록 지도한다. 받침이 있는 글자를 연습할 땐 칸을 가로로 정확히 삼등분 해주고, 중앙엔 십자가 표시를 해주어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좋다.
참을성이 없어 글씨를 못 쓰는 학생의 경우엔 시간을 정해주고 다 쓸 때까지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좋다. ‘한 문장을 2분 동안 써보자’와 같은 방식으로 한자 한자 정성들여 쓰도록 지도하고 잘 썼을 땐 칭찬 스티커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 글씨를 못 썼다고 해서 모두 지우고 다시 쓰게 하면 글씨 쓰기에 심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날짜, 단원명 등 ‘핵심어’만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한 뒤 그 부분만 지우고 다시 쓰도록 지도한다.
4∼6개월 동안 매일 30분 이상 꾸준히 연습해야 교정이 가능하므로 글씨 쓰기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글자 모양을 익힐 수 있도록 ‘□’ ‘△’ ‘▽’ ‘◇’ 모양의 틀을 만들고 자음과 모음 카드를 만들어 퍼즐놀이를 하거나 좋아하는 학습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를 자신이 직접 써보게 보게 하는 방법을 활용해 보자.
짧은 시에 그림을 그려 시화를 만들도록 하고, 액자에 넣어 걸어주는 것도 좋다. 카드를 만들어 친구나 학교 교사에게 편지를 쓰게 하면 글씨 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우리 독서논술 이언정 선임연구원은 “지우고, 쓰고 확인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사고력, 글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심리적 안정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글의 첫인상을 좋게 하는 글씨 연습
초등학교 고학년생 이상은 아무렇게나 쓰던 습관이 굳어져 글씨를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씨 교정을 할 땐 처음부터 기교를 부리려고 하지 말고 ‘고딕체’로 ‘가나다라…’를 여러 번 써보면서 글자 모양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되면 모음의 끝을 꺾는 명조체 등으로 글자 모양을 변형해 자신만의 글씨체를 발전시키도록 한다.
글자가 깨알같이 작거나 산만해 보일 정도로 크지 않도록 원고지를 사용해 연습하는 것이 좋다. 일반 노트를 사용할 때는 아랫줄에 글자를 붙여 문장이 일자(一)가 되도록 쓰고, 띄어쓰기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 보다 깔끔해 보인다. 특히 ‘ㄹ’ ‘ㅁ’ ‘ㅂ’ ‘ㅌ’ ‘ㅎ’을 받침으로 쓸 경우엔 획을 곧게 써 보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논술시험 땐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글자를 빨리 써야 하므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신문이나 교과서에 나온 글자들을 빠르게 따라 써 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 한우리 독서논술 이언정 선임연구원, 바른글씨 최재만 대표.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