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리에르의 눈물
서 양의 책상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의 공부법을 소개한 신문기사가 빼곡히 붙여져 있다. 서 양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에 서 양의 어머니가 참고하라며 신문에서 오려준 것.
물론 이런 공부법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투리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우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등 상위권 학생들의 이런저런 공부법을 따라해 봤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가장 속이 상하는 사람은 당연히 서 양 자신이다. 서 양은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상위권 애들만큼 안 되니까 ‘꿀리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성적표를 받은 날 방문을 걸어 잠그고 펑펑 운 적도 많다.
“성적이 좋지 않다는 사실보다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는 서 양의 얘기다. 대한민국 중위권 학생들의 눈물은 아무리 노력해도 모차르트의 재능을 넘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자책하며 지새운 밤이 많았다는 작곡가 살리에르의 그것과 닮았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도 반갑지 않다. 평소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공부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완벽한 아이를 일컫는 말)’와의 비교도 모자라 친척들의 ‘공부 청문회’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 “사촌 누구누구는 전교 몇 등인데 너는 몇 등이니? 무슨 대학 갈 거니?” 등 쉴 새 없는 질문 공세는 이들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2학년 장모(17·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군은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질문 속에 ‘너는 왜 그것밖에 못 하냐’는 의미가 담긴 것 같아 속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장 군은 올해 추석에는 차례에만 참석하고 모의고사를 핑계로 인근 도서관으로 향할 작정이다.
눈높이를 낮추는 것도 쉽지 않다. 내신 기준으로 반에서 10등 정도 하는 고교 2학년생 송 모(17·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군은 얼마 전 부모님께 “목표 대학을 낮추고 싶다”고 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부모님이 “목표에 맞춰 성적을 올릴 생각은 안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든다”며 “그런 생각할 시간 있으면 한 자라도 공부를 더 하라”며 꾸중을 한 것. 송 군은 “원칙적으로야 부모님 말씀이 맞지만, 대입 수시모집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이루기 힘든 목표에 집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더 초조하고 집중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 “중위권을 중위권이라 부르지 못하고”
실제로 대다수 엄마들에게 ‘중위권’이라는 용어는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학습컨설팅 전문 TMD교육그룹의 오혜정 컨설턴트는 “자녀의 학습능력을 진단해 개선책을 찾기 위한 학습컨설팅 시간조차 ‘중상위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예전엔 잘했는데 요즘은 떨어졌다’는 식으로 자녀의 정확한 성적 공개를 꺼리는 엄마들이 대다수다”고 말한다.
임 씨는 “나중에 진짜 성적이 밝혀질지언정 일단 상위권이나 중상위권이라고 해둬야 학원 강사도 공부 잘하는 애들과 똑같이 대해주지 않을까 싶어 아이의 성적을 정확히 말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부모들의 스트레스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옮겨진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죽어라 공부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녀가 잠깐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보는 모습만 보이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윤모(43·여·서울 마포구 상암동) 씨는 “안 그래도 지쳐있을 아이에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못하나’ 하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자꾸 닦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