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단속후 작성한듯… “신빙성 의문” 시각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밀집해 있는 불법 성매매 업소의 한 업주가 평소에 돈을 건넨 경찰관들의 리스트를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 ‘뇌물수수 의혹 경찰관 메모’가 8일 공개됐다.
경찰과 업주들에 따르면 장안동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A 씨는 자신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경찰관들의 이름을 기록한 메모를 공개하며 “여기 적힌 경찰관들에게 500만∼700만 원을 상납했다”고 주장했다.
이 메모에는 경찰관들의 이름과 ‘지구대’ ‘여청계’(여성청소년계) ‘질서계’(생활질서계) 등 소속, ‘이백’ ‘삼백’ ‘일백’ 등 돈의 액수도 쓰여 있다. 또 ‘식당’ ‘공원’ ‘장안 뒷길’ ‘탄천로’ ‘답십리’ 등 돈을 건넨 장소도 표시돼 있다.
그러나 경찰관들의 직책은 적혀 있지 않으며, 일부 경찰관은 이름이나 돈을 받은 장소가 없었다. 또한 이 메모는 돈을 건넬 때마다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최근 경찰의 단속이 강화된 뒤 기억에 의존해 작성한 것으로 보여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경찰은 실명이 확인된 경찰관이 아직 없고, 정식으로 경찰에 이 메모를 제출하기 전에는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태도다.
이중구 동대문경찰서장은 “메모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누구든 엄중히 처벌해야겠지만 누가 기록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장부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시작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업주들은 “장부가 공개된 것은 A 씨의 돌출 행동으로 인한 것”이라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또 다른 업주인 B 씨는 “A 씨가 경찰관과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 장부를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업주들은 ‘상납 리스트’ 대신 평소 매수해 놓은 경찰관들에게서 얻은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연락망과 근무 일정표 등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 연락망에는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소속 부서와 휴대전화 번호가 나와 있다고 한다. 또 근무 일정표에는 경찰서 내 주요 부서의 당직 근무 일정 등이 나와 있어 평상 시에 단속이 이뤄질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업주 C 씨는 “이중구 서장이 부임한 뒤에도 업주들에게서 돈을 받고 경찰 연락망과 근무 일정표를 건네준 경찰관들이 있다”며 “이 연락망과 일정표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