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년에 1초 오차… ‘시간 기준’ 잡다
국내 일부 대형 이동통신 기지국은 3000년에 1초의 오차만 나는 루비듐 원자시계를 사용한다. 기지국의 시계가 정확하지 않으면 휴대전화에서 받은 신호가 다른 기지국으로 넘어갈 때 다른 휴대전화의 신호와 섞여 혼선이 생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시 판교 중심상업용지를 전자입찰 방식으로 분양할 때 보증금을 내고도 참여하지 못한 김모 씨가 “한국토지공사가 대한민국 표준시보다 2분 일찍 마감해 응찰하지 못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토공 측은 청약시스템에 마감시간을 적시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였지만 시스템 전문가들은 “조달청은 전자입찰 때 시스템의 시간이 표준시와 다를 수 있어 남은 시간을 명시한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처럼 1초의 중요성은 초정밀을 요구하는 항공우주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가장 정확한 시계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뉴스 직전의 시보를 떠올리며 “방송국”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정답은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길이시간센터이다.
이 센터가 지난 10년간의 연구개발로 최근 만들어낸 ‘KRISS-1’은 30만 년에 1초의 오차밖에 허용하지 않는다. 그동안 최고의 정확성을 자랑하던 세슘 원자시계보다 10배 정확하다.
KRISS-1은 시간의 오차를 초래하는 자기장 등 10가지 요인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으로 오차를 줄였다. 올해 안으로 국제등록을 받을 예정.
권택용 박사는 “정확한 시간을 토대로 한 표준시의 활용 분야는 인터넷 금융이나 전자상거래, 내비게이션, 인터넷 서버의 보안기능 강화 등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입찰 논란과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홈페이지(www.kriss.re.kr)를 통해 대한민국 표준시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표준은 사회정의를 확립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조선조 암행어사 박문수는 놋쇠로 만든 자인 ‘유척(鍮尺)’을 마패만큼 소중히 소지하고 다녔다. 지방의 수령들이 군포 등을 받을 때 다른 자를 이용해 백성을 속이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이름 그대로 과학과 산업, 생활 등의 분야에서 표준의 표준을 잡아주는 ‘국가 측정표준 대표기관’이다. ‘국가는 국가표준 제도를 확립한다’는 헌법(제127조 2항) 정신에 따라 탄생됐다.
마치 체조대형을 만들기 위해 “기준” 하고 외치듯 1978년 12월 허허벌판이던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연구소 가운데 최초로 자리했다. 대덕연구단지 내의 다른 연구소들에 물질량, 온도, 시간, 질량, 전류, 길이, 광도 등 7개 분야의 표준을 확립하고 제공한다.
또 170여 개의 측정 및 시험분야에 대한 표준을 확립하고 그 결과를 산업계 등에 제공해 자동차, 산업제품의 품질 향상과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첨단기술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 연구원 정광화 원장은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높은 수준의 측정능력이 요구된다”며 “‘고객을 위한 연구소’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대덕연구단지 내의 연구소와 벤처기업에 관련된 것으로 소개할 만한 내용이 있거나 이 시리즈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동아닷컴 대전지역 전용 사이트(www.donga.com/news/daejeon)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