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강남권 학부모들 한숨

  • 입력 2008년 9월 16일 02시 59분


고교선택제 “이럴 수가” vs “이래야지”

“진짜 궁금해요. 아이들 인생을 ‘추첨’에 맡기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주부 강모(44·서울 송파구) 씨는 한숨부터 내쉰다. 서울시교육청이 행정 예고한 ‘서울시 고등학교 학교군 설정안’ 때문이다.

2010년부터 실시되는 ‘선(先)지원 후(後)추첨제’ 방식에 따르면 학생은 자신이 거주하는 학군에 상관없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는다. 강북 거주 학생도 강남 지역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

이 안에 따르면 서울 전 지역 학교를 범위로 하는 단일학교군에서 두 곳을 선택하는 1단계와 거주지 중심의 일반학교군에서 두 곳을 선택하는 2단계에서 배정받지 못한 학생은 3단계 추첨을 통해 거주지 및 인근 지역 학교로 배정된다.

강남 엄마들 시각에선 강남 거주 학생이 강북 지역 학교에 가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게 된 것. 강 씨도 이 문제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 다른 학군에 속한 학생들의 ‘쏠림지원’으로 이른바 강남 8학군에 속하는 아들이 ‘비선호’ 학교에 배정될 확률이 높아질 거란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다른 학군의 아이들보다 원하는 학교에 배정될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0.001%의 확률이라도 다른 학군에 배정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요즘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면 1단계에서 어느 학교에 지원해야 할지를 놓고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도봉구 창동에 거주하는 주부 문모(47) 씨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있다. 전교 5등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는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도 강남 지역에 몰려있는 ‘명문고’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

문 씨는 “지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어디냐”고 말했다. ‘피하고 싶은’ 학교가 몰려있는 학군에서 벗어나 아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지역 제한이 없는 특수목적고나 영재학교에 입학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

그는 “사는 곳에 따라 ‘누구나 가고 싶은 학교’에 지원조차 할 수 없었던 제도야 말로 불합리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문 씨는 선배들의 인맥과 학교의 전통, 명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를 중심으로 지원 학교를 고를 계획이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통학시간. 원하는 학교에 배정되더라도 버스로 한 시간 이상 통학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 씨는 버스로 통학시간이 30분 안팎인 지역에서 ‘상위권 대학 합격자가 가장 많은 학교’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느라 벌써부터 바쁘다.

하지만 새로운 고교 배정 방식 때문에 가슴 철렁한 강 씨는 물론이고 찬성하는 문 씨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1단계 통과를 순전히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두 엄마는 고교 입시부터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입시전략’ ‘눈치작전’에 매달려야 할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새 제도를 내놨지만 이로 인해 서울시내 학부모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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