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하는 서울 교통시스템
2004년 7월 서울시가 버스 준공영제를 핵심으로 한 교통체계 개편을 단행했을 때 서울에선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수십 년째 타던 버스가 사라지자 시민들은 아우성을 쳤다. 서울시가 자랑했던 버스카드 T머니 시스템은 곳곳에서 말썽이었다. 시민들의 항의전화로 시장실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비판의 선봉에 언론이 있었다. 꼼꼼한 사전준비 없이 무리하게 교통체계 개편을 밀어붙여 시민 불편과 혼선을 자초했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교통체계 개편의 어려움을 실토한 바 있다. ‘2004년 7월은 한 달 내내 여론의 십자포화에 시달렸다. 버스 개편 시행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매일 도시 전체를 전쟁터로 삼았지만 도무지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고가차도를 없애고 버스전용차로를 도입한 교통시스템은 미래를 바라본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민들은 카드 한 장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편리하게 갈아타게 되었다. 연례행사였던 버스파업 위협도 서울에선 사라졌다. 교통체계 개편에는 1500억 원의 추가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시민과 버스회사의 만족도는 그 이상이었다. 준공영제를 처음 시도한 나라는 이스라엘이었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성공하자 베트남 중국 영국 터키 등 각국이 벤치마킹에 나섰다. 그해 말 한 일간지는 ‘교통체계 개편을 비판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반성기사를 썼다.
요즘 갑자기 버스대란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제에 대한 비판이 ‘교통체계 개편 반대’를 외쳤던 당시 여론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판의 논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버스전용차로 때문에 승용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어서 고속도로의 기능이 마비됐다는 것, 둘째는 생각보다 버스 이용객이 늘어나지 않아 버스전용차로의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버스전용차로로 인해 승용차들이 밀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승용차가 받는 불이익은 버스전용차로 도입이 노렸던 정책효과다. 그러니까 승용차 대신 버스나 지하철을 타라는 얘기다. 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34개 버스노선의 승객이 하루 최대 5000명밖에 늘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건 보기 나름이다. 5000명의 승객이 자가용을 집에 두고 나왔다면 이는 주목할 만한 변화다. 버스대란이나 의약분업 파동에서 보듯이 국민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만큼의 승객 증가도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고속도로 전용차로 실시돼야
이명박 대통령이 들고 나온 녹색성장론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운하 대신 녹색성장을 신성장동력으로 들고 나온 것은 잘한 일이지만 정부가 녹색성장을 ‘그린 카(green car)’나 신재생에너지 등 기술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녹색성장은 기술보다는 국민의 인식과 사회적 시스템이 따라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말하려면 에너지 저소비 사회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밝히고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해야 한다. 서울 교통체계 개편 때 시민에게 고통과 불편을 주었듯이.
녹색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저에너지 사회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민들이 기꺼이 승용차보다 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살아남느냐, 폐지되느냐의 기로에 선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의 미래가 녹색성장의 미래라고 판단한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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