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조건 - 임금 협의’ 본래 취지 무색
학력평가 통한 학교평가도 사실상 불가
일부 지역 “학교설립때 노조 의견수렴”
학교장, 노조 동의없인 학교운영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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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각 지부가 16개 시도 교육청과 맺은 단체협약은 일반적인 단체교섭의 대상과 범위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교원노조법 제6조 제1항은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조합원의 임금, 근무조건, 후생복지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도 교육감과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의 단협은 법에서 규정한 임금이나 근로조건, 후생복지를 넘어서 교육정책과 인사문제, 행정업무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단위학교 차원에서 학교장이 결정할 내용까지 시도 교육청이 교원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경우가 많아 학교장은 전교조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학교 운영이 쉽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노조의 교육정책 개입 여지 많아
일부 단협의 경우 학교 설립 등 교육정책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까지 전교조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조 전남지부의 단협에는 ‘도교육청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개발 등을 이유로 학교 설립을 요구했을 경우 전남 교원노조의 의견을 듣는다’고 명시했다.
광주와 제주지부의 경우 교원수급 문제와 관련된 △학과의 폐과 △학교의 신설 이전 및 통폐합 △일반계와 실업계의 학교 계열 변동 관련 사항에 대한 논의 과정에 노조원을 참여시키도록 했다.
특히 전교조는 가장 최근 단협을 체결한 대전, 충북, 전남 등 3개 지부의 ‘2007년 단협’에는 예외 없이 ‘자립형 사립고 설립’과 관련한 조항을 추가했다.
이 지역에서는 교육청이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자립형 사립고를 신설하려 해도 사실상 전교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또 대부분 지역에서 학력 평가를 통한 학교 평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단협에 규정했다.
서울의 경우에도 ‘학교 평가는 평가영역을 축소해 실시하되 별도의 보고서는 작성하지 않는다’는 등의 조항이 있어 학교 평가를 통한 차별적인 예산 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 곳곳에 인사권 개입 근거 조항 마련
전교조는 교원의 인사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서울의 경우 ‘교육청은 교원인사관리 원칙 수립을 위한 협의회에 교원노조 위원을 30% 범위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교육청 전보업무 추진과정에 교원노조의 참관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고 못 박았다.
서울지역 교사 가운데 전교조 가입 비율은 15.5%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보다 2배 가까운 30%가량이 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인천의 경우에도 인사 전보 규정을 제정 및 개정할 때는 전교조 의견을 사전에 수렴하도록 규정했다. 광주는 시교육청과 지방교육청의 인사위원 중 교사 1인은 교원노조와 협의해 위촉하도록 했고 전남 또한 ‘도교육청 인사위원회에 교원노조가 추천한 1인을 차기 위원회 구성 때부터 참여시킨다’고 명시했다.
○ 일부 교육청 재협약 추진
일부 시도교육청은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독소조항이나 불공정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지적이 일자 재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5일 “교원노조 단체들이 단체협약 개정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10월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공 교육감은 “현재의 단체협약에는 있어선 안 될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수요자 교육이 이뤄지려면 단호히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공 교육감은 문제 조항으로 △주번 당번교사 폐지 △휴일 교사 근무 금지 △방학 중 교사 근무 자제 △교사 출퇴근기록부 폐지 △수업계획서 교장에게 제출 중단 등을 거론했다.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일부 시도교육청도 문제 조항에 대해 교원노조와 다시 협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