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취재팀이 초등학교 주변에서 구입한 과자에는 재료의 원산지가 대부분 ‘수입산’으로만 표시돼 있다.
[긴급점검] 학교주변은 식품 안전 ‘무방비지대’
가격 100원, 200원 대부분… 아이들 손쉽게 구입
“엄마는 먹지말라하지만 다른 친구들도 다 사먹어”
국회 “식약청, 멜라민 파동 2주나 늑장대응” 질타
해태제과, 문제된 中업체에 위탁계약 종료 통보
25일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A 초등학교 앞. 방과 후 장모(8) 양은 문방구에서 100원을 주고 이른바 ‘옥수수맛 쫄쫄이’를 사먹고 있었다. 장 양은 “엄마가 먹지 말라고 하지만 맛있어서 몰래 자주 사먹는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계동 B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 앞 상황도 비슷하다. 진열대에는 이름 모를 과자 20여 종이 수북이 쌓여 있다. 유명업체 제품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 영세업자들이 만든 것이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초등학생에게 인기 있는 과자를 물어 보자 가게 주인은 16종을 보여주었다. 대부분 100∼200원짜리로 16종의 가격을 다 합쳐도 1800원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멜라민 파동이 터지면서 초등학교 주변에서 판매되는 과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과자들은 대부분 원재료의 원산지가 불명확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품들이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제2의 뇌관’이다”라고 경고했다.
▽대부분 원산지 숨겨=취재팀이 서울 시내 초등학교 주변 20곳을 긴급 취재한 결과 10∼18종의 과자가 초등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들 제품의 절반 정도는 원산지를 ‘수입산’이라고만 기재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원료인지 알 수 없었다.
아예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과자도 상당수였다. 현행 농산물품질관리법상 원산지는 순수 국산 재료일 때에는 ‘국산’이라고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식품은 그런 표시가 없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도 어린이 과자 원료의 90% 이상이 수입산이라고 밝혔다. 결국 수입산이 졸지에 국산으로 둔갑한 셈이다.
취재팀이 수거한 16종의 과자 중 원재료와 식품첨가물의 원산지를 제대로 밝힌 것은 7종에 불과했다. 5종류는 아예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았고, 4종류는 수입산으로 표시돼 있었다. 원재료의 출처를 믿을 수 있는 제품이 50%가 되지 않는 것.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이훈구 기자
▽싼값에 아이들 현혹=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문구점 주인은 “과자를 갖다 놓지 않으려고 해도 아이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원산지도 불분명한 과자에 손이 가는 것은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최모(11) 군은 “학용품을 사러 들렀다가 거스름돈으로 과자를 사먹는다”며 “다른 친구들도 다 사먹는데 나만 안 먹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주부 이선숙(여·서울 은평구 홍은동) 씨는 “6세 된 딸아이가 과자를 사먹겠다고 해서 동네 가게에 가봤더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업체들이 만든 100원짜리 과자가 잔뜩 진열돼 있었다”고 말했다.
▽업체는 대충대충, 정부는 뒷북=학교 주변 문구점이나 상점에 과자를 납품하는 업체는 대부분 영세상인으로 정부의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3월 ‘생쥐 새우깡’ 사고가 터졌을 때 정부는 보건복지가족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식품종합안전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매번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중국에서 멜라민 분유 사건이 터진 후 농식품부는 “중국에서 분유나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이 국내에 수입된 적이 없다”며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
2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식약청의 늦장 대응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중국 언론이 멜라민 분유를 보도한 후 회수에 2주나 걸린 것은 신속하지 못한 처사였다”고 윤여표 식약청장을 추궁했다.
전혜숙 민주당 의원은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안전경보를 발령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제과업체는 생산관리를 강화하기보다 식품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과문을 발표하는 수준이다.
해태제과는 25일 ‘미사랑 카스타드’ 제품을 위탁 생산해 온 중국 업체에 ‘생산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또 해태제과는 “멜라민이 검출된 미사랑 카스타드에 쓰인 분유는 중국에서 문제가 된 22개 제품이 아니라 다른 업체인 ‘완다산(完達山)’의 제품”이라며 “헤이룽장 성에서 해당 분유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광원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어린이들이 주로 먹는 식품은 원산지 규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라며 “수입 단계부터 철저히 검사하고 지금보다 더 강화된 식품안전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