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산책/이예진]준비 안된 영어강의, 학생들은 괴로워

  • 입력 2008년 10월 4일 03시 00분


대학교 영어 강의 시간. 교수님은 수업 오프닝을 위해 영어로 첫 질문을 던진다. 순간 웅성웅성하던 교실이 조용해지고 학생들은 교수님의 눈빛을 애써 외면한다.

개강 후 첫 시간. 영어수업 교실에는 한국인 학생보다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이 더 많다. 교실을 둘러본 한국 학생 A 씨는 듣고 싶던 전공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영어 실력을 탓하며 수업 변경을 결심한다.

얼마 전 대학생 B 씨는 교내 심리상담 센터를 찾았다. 학기 중 연이은 영어 발표와 과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생은 영어 강의가 대학과 학생의 경쟁력을 키워준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교육 서비스 소비자인 학생들은 강의실 내 학문적 소통 단절 등 부작용을 지적한다. 대학생 C 씨는 “강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때도 있고 영어에 능통한 아이들만 발표하는 분위기라서 위화감이 조성된다”며 영어 강의로 인한 수업 의욕 상실을 지적했다. 세계화 추세에 맞춰 영어로 학문을 논한다는 영어 강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영어수업을 위한 언어적인 도움을 학생에게 제공해야 한다. 일부 대학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 가이드, 영어 논문 읽기와 보고서 쓰기 등 영어 강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더 현실적인 대안을 필요로 한다. 대학생 D 씨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쓰는 보고서 교정을 받기가 쉽지 않아 매번 난감했다”며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에 대비하는 튜터링 등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영어 강의 지원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했다.

둘째, 영어 강의를 듣기 전 논리적인 어학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수업이 선행돼야 한다. 생활 회화가 아닌 수업시간에 영어로 논리를 표현하는 일이 어색한 경우가 많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로 다양한 교양을 사고하는 수업을 접한 후 영어 강의를 듣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전공을 고려한 영어 강의 커리큘럼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 E 씨는 “전공 기초 선수과목은 한국어로, 심화과목은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개념을 영어와 한국어로 두 번 공부하는 점이 비효율적이었다”며 “심지어 영어로 강의할 필요가 없는 전공까지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수업 이해도만 떨어뜨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무조건적인 영어 강의 확대보다는 제대로 된 영어 강의 정착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예진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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