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사이버 정치, 민주주의 새 모델 될 수 있나?

  • 입력 2008년 10월 6일 02시 56분


정치란 국가가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체제를 뜻한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관심이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매우 다양한 이해집단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이 다양한 주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場)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 생각의 시작

이 시대의 화두는 단연 ‘정보’다. 정치 분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정보화 사회에 발맞춰 ‘사이버 정치(e-politics)’라는 새로운 정치 문화도 등장했다.

국내 인터넷 이용 인구는 2500만 명, 초고속 통신망(ADSL) 가입자는 700만 가구(2002년 1월 기준)로 추산된다. 정치인에게도 개인 홈페이지 운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각 정당은 홈페이지 관리를 전담하는 사이버 홍보팀을 두고 있다. 정치권의 주요 공략 대상은 20, 30대의 젊은 누리꾼이다. 누리꾼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정치·사회적 이슈에 빠르게 반응을 보인다. 국회에서 정치 공방이 가열될 때면 여야 각 당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격려 또는 비방의 글로 넘쳐난다.

유권자 중심의 쌍방향 인터넷 정치는 정치 패러다임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앞으로 일회성, 일방향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TV 토론보다 후보와 유권자들이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온라인 토론회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메일 발송, 인터넷 정치 자금 모금(e-fundraising), 사이버 후원회 결성 등 다양한 사이버 선거활동이 위력을 발휘하며 기존의 선거 운동 방식을 대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새로운 정치 문화를 두고 그 발전 방향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 시각이 있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대의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여 시민들이 직접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정보는 쉽게 공개되어 정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으며 정치인들은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자신을 홍보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학사 ‘정치’]』

○ 뒤집어 보기

하지만 ‘전자 민주주의가 새로운 정치 문화의 대안인가’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이버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증폭 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힘들어지고 즉흥적인 감정으로 의사 결정을 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지배 엘리트들이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하여 다수 대중을 원격 조종할 수 있게 되어 중우 정치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정치사에는 바람직한 시민 정치 문화가 정착되지 못해 정치 발전 자체가 저해되었던 경우가 많다. 정치 발전에는 제도가 아니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정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의 정치 문화가 올바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도 또 다른 패거리 정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상원 의원 선거에서 우세를 보이던 A 의원은 자신을 귀찮을 정도로 근접 촬영하고 있는 인도계 청년을 보고 “저 친구는 마카카(macaca·원숭이를 뜻하는 인종 차별적 발언)로군”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는 바람에 A 의원 인종 차별 논란으로 낙선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B 의원은 육류 가공 단체가 주최한 농장 관련 법안 공청회에서 10초 정도 졸았고 ‘B의 낮잠’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여론이 악화돼 선거에서 패했다.』

사이버 정치에서는 ‘편집’이라는 기술이 유권자들의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하기도 한다. 정치인의 공약이나 능력에 대한 이성적 판단보다 아무 이유 없는 ‘악성 댓글’이 위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사이버 정치로 인해 오히려 정치 문화가 혼탁해지는 것이다. 사이버 포퓰리즘의 매력에 빠진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악용해 민중의 이성을 마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기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사이버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특성을 이기(利器)로 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태홍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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