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내장난이 남에겐 비수”… ‘악플 반성’ 숙연해진 강의실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54분


“수없이 반성하고 나를 자책했다.” 대학생 A 씨는 얼마 전 여가수 B 씨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봤다. 과도한 노출과 짙은 화장에 거부감을 느낀 A 씨는 B 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방문해 악성 댓글(악플)을 남겼다.

우발적 행동이었지만 대부분의 누리꾼들도 ‘비호감’이라며 B 씨에 대해 악플을 남겼기 때문에 A 씨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글을 남긴 뒤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A 씨는 우연히 TV 토크쇼에 출연한 B 씨를 봤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악플로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A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후 A 씨는 대학 수업시간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참회하는 반성문을 제출했다.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학생 C 씨는 친구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오빠 나 임신했어, 왜 연락이 안돼?’라는 글을 남겼다. 장난삼아 한 일이었지만 그 친구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크게 다퉜고 두 사람은 멀어졌다. C 씨도 반성문을 통해 “아무리 친구 사이의 장난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해 허위 사실을 남겨 친구를 괴롭힌 건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반성했다.

이들이 수강한 수업은 2년 전 개설된 고려대 컴퓨터정보학과 정창덕 교수의 ‘컴퓨터와 인터넷윤리’ 수업. 이 수업은 학생들이 악플 가해 경험을 제출한 뒤 이것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고백하길 꺼렸다. 이에 정 교수는 악플 피해 경험도 함께 제출받았다. 자신의 주변인들도 똑같이 악플의 피해자임을 깨닫게 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악플 가해 경험도 공개하기 시작했다. 2년 전 한 학생은 수업시간에 자신이 쓴 악플에 대해 반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 교수는 “최근 최진실 씨의 자살 사건을 보면서 교육자로서 책임감을 느꼈다”며 “초중고교 시절부터 인터넷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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