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민파동 ‘불량가게’ 낙인 억울”
폐업속출 업소들 볼멘 목소리도
“이것 보세요. 이게 오늘 하루 번 돈이라니까요.”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A초등학교 앞. 8년째 같은 장소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김충혜(49·여) 씨는 돈 통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그 돈은 7000원 남짓. 김 씨는 “최근 몇 달 동안 한 달 평균 수입이 70만 원 정도”라며 “몇 년간 계속 수입이 줄었지만 특히 지난해부터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자 학생들에게는 생활공간의 일부인 학교 앞 문구점. 등굣길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던 ‘학교 앞 백화점’ 문구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의 ‘문구용품 소매업 종사자수 현황’에 따르면 1999년 4만4345명, 2000년 4만4381명이었으나 이후 3만8286명(2004년), 3만4708명(2005년), 3만4015명(2006년)으로 계속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업계 종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해와 올해엔 더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서울 지역 15곳의 초등학교 주변을 직접 살펴본 결과 소형 문구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많아야 1, 2개 정도였고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문구점이 있다고 해도 손님은 드물었다. 몇몇 문구점은 오후 3, 4시에 가게 문을 닫을 정도.
문구점 주인들은 “대형 마트나 대형 문구점의 등장에 최근 불경기와 불량식품 파동까지 겹쳐 더욱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관악구 신림동 B초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하는 이모(51·여) 씨는 “3, 4년 전만 해도 팔렸던 것들이 인근 대형마트가 생긴 뒤부터 팔리지 않는다”며 “연필, 도화지, 공책 등만 좀 팔리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한 문구점 주인은 “요즘 교사, 학부모들은 작은 문구점에서 파는 것들은 모두 불량하다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말한다”며 “우리는 먹을거리를 아예 가져다 놓지도 않았는데 이번 멜라민 파동에서 또 ‘나쁜 놈’이 됐다”고 억울해했다.
학용품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던 한 주인은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 한 곳에서 오랜 기간 장사하던 사람들이라 갑자기 다른 일을 하기도 힘듭니다. 관심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일방적인 비난으로 문구점을 죽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