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잘 죽기 운동’이다. 웰 다잉 운동

  • 입력 2008년 10월 24일 11시 17분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며 웰다잉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오진탁 한림대 교수. 동아일보 자료사진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며 웰다잉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오진탁 한림대 교수.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제는 ‘잘 죽기 운동’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삶에 힘겨움을 느끼던 일반인들의 모방 자살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묻지마 살인’에 의한 피해자도 발생했다. 자살과 죽음이 연일 뉴스에 오른다. 이런 가운데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준비를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마디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잘 살기 운동인 ‘웰 빙(Well Being)’ 운동에 이어 잘 죽기 운동인 ‘웰 다잉(Well dying)’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웰 다잉이란 무엇인가

오진탁 한림대교수(49․생사학)를 중심으로 ‘웰다잉 연구회’가 2008년 8월에 출범했고 ‘웰다잉상담연구소’도 2006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은영(56)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웰다잉 운동본부’를 결성, ‘품위 있는 죽음 맞이하기’ 운동에 나섰다. ‘웰다잉 운동본부’는 조계종 포교원 산하 단체인 불교여성개발원에 속해 있다. 이 교수는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노년층을 위한 문화운동도 필요하다”며 운동본부를 결성한 계기를 밝혔다. 이 교수는 ‘웰다잉’을 “우리 삶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 잘 죽기 위해 의미 있고 품위 있는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웰다잉은 노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웰다잉 운동의 필요성을 사회에 부지런히 알리고 있는 오진탁 교수를 만나봤다.

오교수는 ‘왜 죽음을 준비해야 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오해를 타파하고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면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할 수 있고 죽음을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자살 시도 같은 어리석은 생각은 절대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 영상취재 :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웰다잉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오교수다. 오 교수는 “2006년 여름부터 웰다잉 운동을 시작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예전에 비해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웰다잉 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시켜줄 체계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점을 비난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죽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에서 죽음준비에 관한 교육을 10여 년 전부터 준비했다. 타 대학 한두 군데에서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죽음에 관한 체계적이거나 깊이 있는 지식이 부족하다. 이미 미국은 40여 년 전부터 ‘죽음교육(Death Education)’을 시작 했고 일본은 30여년 전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 교수는 “자살을 하게 되면 고통도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자살을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자살을 하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으로 가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자살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죽음 의 질’이다”고 말했다.

◆웰 다잉 운동 구체 사례

그는 일반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웰다잉 운동을 추천했다.

“웰다잉을 위한 명상을 해라. 죽음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가정했을 때 편안하고 여유롭게 떠날 수 있는가와 비슷한 질문들을 계속 던져라.”

오 교수는 한 달에 한 번 ‘웰다잉연구회’ 모임을 갖는다. ‘웰다잉연구회’의 구성원들은 오 교수에게 웰다잉 교육을 60시간씩 받은 회원들이다.

이들은 강의와 영상자료를 통해 죽음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하고 죽음을 대비한다. 임사체험자들, 자살시도자들의 체험담을 듣고 토의하는 한편 달라이 라마 등 고승의 설법을 들으며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세계각지에서 모아온 200여개의 자료를 통해 시청각교육을 실시한다. 자살예방협회장, 장기기증자, 호스피스 관계자 등 여러 분야의 인사들을 초청해 삶의 가치, 나눔의 가치, 봉사의 가치 등을 살피면서 삶의 의미, 가치 있는 죽음 등을 생각한다.

웰다잉 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성미(43·불교선언회법사)씨는 웰다잉의 이색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입관체험식’에 대한 경험을 말했다. 김 씨는 “보통 일반적으로 입관체험을 하면 형식적으로 수의를 입고 관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염을 한 상태에서 무덤을 파 흙을 뿌리는 과정까지 해보게 되면 다르다. 입관체험이 끝나고 나면 나 역시 그랬고 다른 분들도 거의 눈물을 흘렸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이후의 삶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하고는 다르게 살겠다는 다짐과 반성들을 했다”고 그의 경험을 말했다.

‘웰다잉 연구회’ 회원인 장옥화(49·웰다잉상담연구소장)씨는 웰다잉을 통해 자신의 삶이 생동감 있게 변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중요성을 알았고 내 삶이 굉장히 생동감 있게 변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워졌고 지금의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가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웰다잉의 효과를 증언했다.

오교수는 2차례 자살시도를 했던 A양을 웰다잉으로 치료한 적이 있다며 A양과의 상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 동영상에서 A양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힘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자살은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웰다잉 교육을 받으면서 A양의 생각은 변했다고 했다. 자살이 절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 A양은 “2번 자살시도를 할 때에는 ‘힘들면 죽어버리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노력하고 극복을 많이 하고 있다. 죽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오교수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살이 사후세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자살은 남겨진 주변 사람들에게 더 힘겨운 상황을 제공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죽음을 공부하게 되면 죽음의 질뿐만 아니라 삶의 질, 더 나아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향상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웰 빙은 웰 다잉으로 나아간다

죽음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극단적인 자살도 있는 반면 품위 있고 편안한 죽음도 있다. 선조들은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다”도 말해왔다. 결국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이든 ‘죽음의 질’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웰빙이 한참 유행했다. 그러나 진정한 웰빙은 웰다잉을 염두에 두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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