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들에게는 현재 병역혜택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국제대회인 응씨배와 후지쯔배 결승에 진출할 경우 군 복무를 면제받습니다. 본래 동양증권배까지 총 3개 대회였는데, 이 대회가 1998년 9회 대회를 끝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2개 대회만 남게 되었지요.
조훈현 9단은 이날 발표에서 스스로 군제도의 최대 수혜자이자 피해자라 밝히면서 ▲응씨배, 후지쯔배 외에 LG배와 삼성화재배도 혜택의 범위에 넣을 것 ▲3개 대회에 한한다면 응씨배를 빼고 LG배, 삼성화재배, 후지쯔배로 할 것 ▲1·2위뿐만 아니라 4위까지 범위를 확대할 것 ▲바둑 상무팀을 창설할 것 등을 제안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바둑계의 이런 간절한 호소가 받아들여지기엔 현실의 상황이 너무도 팍팍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날 조9단도 언급했지만, 현재 바둑계는 주위로부터 ‘스포츠냐, 예술이냐?’라는 물음에 확답을 해야 할 막다른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의 준가맹 단체이고, 바둑의 사촌격인 체스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작금에 있어 바둑계는 “당연히 스포츠지!”라고 즉답을 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병역문제만을 놓고 보면 내심 속을 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2개 국제대회 1·2위자에 대해 주어지는 군면제 혜택은 ‘바둑의 스포츠화’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생긴, 예술가들을 위한 제도입니다. 즉, 이 경우 프로기사를 ‘스포츠인’이 아닌 ‘예술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젊은 음악도가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군 혜택을 받는 것과 같은 케이스라고 보면 됩니다.
스포츠의 경우 개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 나가 입상을 해야 혜택을 받습니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바둑은 (바둑계 표현에 따르면) 이제 예도의 틀을 벗어나 스포츠바둑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바둑협회가 창립되었고, 바둑은 수 년 째 전국체전의 전시종목으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인드스포츠 세계대회에 국내 기사들이 나가 메달을 따기도 했지요.
이런 마당에 바둑계의 ‘예술 차원’에서의 군 복무혜택 확대에 대한 목소리는 어쩐지 공허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스포츠임을 표방하면서 남의 동네인 예술의 과실까지 얻겠다는 것은 과욕이 아닐까요. 실리를 얻으면서 두터움까지 챙기겠다는 것은 바둑의 기리에도 어긋나 보입니다.
바둑이 진정한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완벽히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병역문제에 관한 한, 바둑계는 지금 헌 부대에 새 술을 우겨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