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레저 실종된 채 곳곳 투기판으로 전락
“어쩔수 없는 상황에선 운에 의존하는 성향”
최근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경마, 경정, 카지노 등 사행 산업의 매출은 오히려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서민층을 중심으로 도박중독자가 급증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경기 어려워 마권에 생계 건다”
주말인 1일 서울 영등포의 경마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13층 건물의 3∼9층을 차지한 장외발매소에는 모니터 앞좌석은 물론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용객이 몰려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일부는 마권(馬券)을 손에 들고 실제 경기 상황을 생중계하는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일부는 베팅 방법을 분석하느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벌써 일곱 번째 경주를 지켜보던 정모(44·일용직) 씨는 자신이 응원하던 말이 막판 역전을 허용하자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내질렀다. 정 씨는 “한 달에 150만 원을 버는데 오늘만 30만 원 잃었다”며 “그동안 잃은 돈이 아까워 이제는 그만두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만여 명. 상당수는 작업복 차림의 40, 50대 서민층이다. 김모(48) 씨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마권에 생계를 거는 사람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고 전했다. 건전한 레저는 실종된 채 투기판으로 전락한 모습이었다.○ 매출액 경마 17%, 경정 20% 증가
국무총리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사행산업 매출액은 △경마 3조7791억 원(전년 같은 기간보다 17.1% 증가) △경정 2709억 원(20.9% 증가) △카지노 5496억 원(6.1% 증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0% 증가했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는 올해 3분기 순이익이 965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분기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불황기에 강한 주식은 도박주(株)”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도박이 성행하면서 중독자도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송훈석(무소속) 의원이 강원랜드와 한국마사회 등에서 제출받은 ‘도박중독센터 이용현황’에 따르면 도박중독상담자는 2004년 1841명에서 2005년 4797명, 2006년 5986명, 2007년 797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8월까지 이미 7084명을 기록했다.
○ 경기불황이 주된 원인
전문가들은 불황으로 희망을 잃은 서민들이 도박에 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경기 불황처럼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면 도박 등 운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사행성 놀이를 대체할 수 있는 여가생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현택수(사회학) 교수는 “서민들이 도박 이외의 방식으로 불만을 풀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나서 건전한 여가산업을 시급히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사행산업 규제안 마련”▼
정부, 오늘 발전안 발표
서민층을 중심으로 도박중독자가 늘어나자 정부가 사행산업 규제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무총리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3일 전원회의를 열고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안’을 확정 발표한다.
사감위는 2006년 전국이 사행성 오락게임인 ‘바다이야기’로 들끓을 때 정부 대책으로 생긴 기관이다.
이번 계획안의 핵심은 경마, 경정, 카지노, 복권 등 합법적인 사행산업의 영업일수를 제한하고 매출액 상한선을 정하는 ‘매출총량 규제’.
지난해 국내 사행산업의 순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0.67% 수준인 6조467억 원.
사감위는 매출 상한선 기준을 지난해 매출액인 6조467억 원으로 정하고 동시에 2011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GDP의 0.58%로 줄이겠다는 예시안을 발표한 바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