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니오베는 사람들이 레토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러 가는 광경을 목격했어요.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고귀한 신이지요. 니오베는 오만에 사로잡혀서 사람들에게 레토를 섬기느니 차라리 나에게 경배를 하라고 소리칩니다. 레토는 자식이 둘뿐인데 자기 자식은 무려 열넷이나 되니, 레토보다 자신이 일곱 배는 더 잘났다며 뽐냈어요.
레토 여신은 그 말을 듣고 상심에 빠져 눈물을 흘렸어요. 이윽고 집에 돌아온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니오베의 못된 행동에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어요. 이들이 활을 매겨 날리자 니오베의 자식들은 저항도 못하고 쓰러졌어요.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날의 참극을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요.
“목덜미에 박힌 활대가 부르르 떨리고, 목젖으로는 화살촉이 비어져 나왔다.”
“아폴론의 치명적인 화살을 뽑아내자 쇠 촉에 폐가 한 점 묻어났고, 허공에 피 보라가 솟구쳤다.”(‘변신이야기’ 6권 235∼245행)
사진 1은 니오베의 딸 하나가 도망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화살이 날아와 등 한복판에 박혔어요. 화살을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왼손도 오른손도 닿지 않습니다. 두 다리는 여전히 질주하려는데, 화살이 명중된 순간 시간은 소스라치듯 응고되고 맙니다. 신에 대한 모독의 대가는 이처럼 처절하지요. 수평과 수직으로 요약되는 사지의 동세는 흘러내리는 옷자락과 더불어 그녀의 최후를 예고합니다. 고통과 싸우는 격정적인 몸짓과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도 잠시 뒤에는 사위어 들고 말겠지요.
마침내 열넷이나 되는 자식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자 테베의 왕 암피온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요. 니오베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무게 때문에 그만 바위가 되었다고 하지요. 사람들은 바위로 변신한 니오베를 멀리 프리기아의 시필로스 산에 옮겨놓았는데, 그 바위에서는 그 뒤에도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고 해요.
사진 2는 청동소조입니다. 여남은 살 먹은 어린 꼬마가 벼랑에 걸터앉아서 제 발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이런,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나 보군요. 왼손으로 발바닥을 꼭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가시를 찾는 모습이 나이답지 않게 무척 신중해 보이네요.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느라, 꼬마는 등이 자라 등껍데기처럼 둥그렇게 굽었어요. 청동소조의 두 팔과 다리 그리고 시선은 모두 한 군데를 향하고 있어요. 바로 발바닥의 따끔거리는 부분이지요. 가시가 안 박힌 오른쪽 발바닥도 동그랗게 움츠렸어요.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찾아서 뽑아내는 순간의 집중력과 긴장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청동소조를 제작한 고대의 조각가는 별것도 아닌 일상의 사건을 소재로 선택했어요. 테베의 여왕 니오베의 비극처럼 무겁고 장중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손가락이나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가시가 궁술의 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여신이 쏜 화살 못지않게 성가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이 작품의 제목은 ‘가시 뽑는 소년’입니다. 화살과 가시는 당연히 고통의 강도와 표현의 강도가 달라야 합니다. 조각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의 주제는 시시할지 모르지만, 고통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시 뽑는 소년’은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니오베의 딸’에 뒤지지 않을 것 같네요.
사진 3은 ‘성 테레사의 환희’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앞의 두 작품이 고대 조각이라면, 이것은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조각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1538년 스페인에서 선종하고,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어요. 성 테레사의 자서전 ‘생애’에는 그녀의 신비한 체험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지요. 이런 내용이지요.
어느 날 천사가 찾아와서 테레사 수녀의 심장에 긴 창을 찔렀다고 해요. 창은 황금으로 되어 있었는데, 창이 몸 깊숙이 박히자 지글지글 타오르는 열기가 온몸에 퍼졌어요. 천사는 창을 찌르고 휘젓다가 다시 빼냈어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몸속 내장이 모두 빠져나가고 오직 신에 대한 충만한 사랑만 남았다고 해요.
조각가 베르니니는 갑작스러운 희열이 테레사 수녀의 몸을 감싸서 그녀가 공중에 떠오르는 절정의 순간을 포착했어요. 황금빛 빛살이 가늘게 떨리는 테레사 수녀의 눈꺼풀 위로 쏟아지고, 구름 사이로 기진맥진한 그녀의 발이 힘없이 삐져나와 있네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빛살과 구름은 오랫동안 화가들만의 고유한 표현영역이었는데, 베르니니가 조각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해요. 우리는 여기서 천사와 수녀, 두 주인공의 몸짓과 표정에 주목합니다. 천사의 불타는 황금창이 전신을 후비고 휘젓는 순간 테레사 수녀를 휘감은 ‘고통스러운 희열’에 대해 생각합니다. 고통과 희열은 물과 불처럼 상반된 개념이지요. 고통조차 달콤했다니, 테레사 수녀의 종교적 체험은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베르니니의 끌은 고통과 희열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는 데 성공합니다. ‘예술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옛 격언이 새삼 떠오르네요.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