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드러나지 않은 함축을 찾아내자

  • 입력 2008년 11월 3일 03시 01분


글을 쓸 땐 이 글이 독자에게 어떤 함축을 갖게 될지 고려해야 합니다. 함축은 글의 속뜻을 말하며 특히 논증적 글에서는 숨은 결론을 말합니다. 즉 드러나진 않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주장을 의미합니다.

함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논의했던 맥락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저자, 독자, 집필 상황을 고려하면 글이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상대방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담긴 함축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왜 그녀는 오늘 빨간 옷을 입고 나왔을까’ ‘왜 그 사람은 오늘 평소와는 달리 중국음식을 먹자고 할까’ 사소한 행동에도 어떤 속뜻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하지만 함축 파악은 특별히 심오한 접근을 요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언어생활에서 일상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이해할 때 그 속에 담긴 함축까지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장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산 정상에 올라 외치는 ‘야호’와 같은 함성은 주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분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야호’라고 외친다면 일종의 축약된 주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선 정보 전달이 주요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이해할 땐 우선 그 주장이 전달하는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보통 일상생활에서 어떤 주장의 함축은 상대방의 태도를 변화시키거나 행동을 유발하는 기능과 관련됩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 배우가 TV 커피 광고에 나와 ○○커피를 마시며 “저는 이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남자 배우의 말은 단순한 정보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이 커피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커피 구매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바로 태도의 변화와 행동의 유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고를 보는 우리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축을 읽는 것은 우리가 일상 언어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일상생활에는 항상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함축을 읽기가 쉽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함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성서를 보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일견 이 말은 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표현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이 글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한 것입니다. 우선 이 말이 나오게 된 전후 맥락을 따져봐야 합니다. 나아가 이 말을 한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만일 로마 식민지 시대에 피지배자 위치에 있던 유대인이 동족에게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 말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부 자체에 대한 거부나 부정이라기보다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전에 들어있는 유명한 주장들도 맥락을 따져 봐야 진정한 속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논증적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보통 세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는 논증의 핵심 요소로 글의 논리적 뼈대에 해당하는 부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글이 다루는 문제(이슈)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저자의 결론과 근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2단계는 글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글의 주요 개념이 무엇이며 그 개념들이 어떤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글에 담겨있는 사실적 정보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2단계까지는 글을 ‘분석’하는 과정입니다. 글 속에 명료하게 드러나 있는 부분을 따져 파악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3단계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글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논증적 글을 읽을 땐 이 세 단계를 거쳐 주장의 함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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